풀도 풀 죽이는 ‘처서 매직’
콩밭의 풀을 매고, 감밭의 풀을 매고, 논두렁의 풀을 매고, 집 앞 밭도 풀을 맨다. 끝없는 풀매기인 것 같았는데, 처서가 지나고 밤엔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풀도 풀이 죽었다. 풀을 베다보면 풀이…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퍼펙트데이즈에 나온 노래 듣고
사야카는 문어 모양 미끄럼틀이 있는 작은 공원을 타코 코엔이라고 불렀다. 색 바랜 문어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루 같은 전망대에 올라 해넘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처참한 역사적 논리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당 총재가 국회에서 제명되며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항쟁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정부는 이들을 탱크로 밀어버릴 궁리를 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18년 동안 무소불위의…
독수리 로드, 출발선의 독수리들
해발고도 1768m.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240㎞ 떨어진 ‘바가 가즈린 출루’(‘작은 바위산’이라는 뜻).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몽골 초원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바가 가즈린 출루에서 태어난 새끼 독수리들은 길고 긴 여행을…
‘선거 불복’ 카드마저 꺼내든 트럼프… 꽤 절박하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민주당 대선 후보)의 파죽지세가 심상찮다. 2024년 7월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직후부터 해리스 부통령은 격전지를 돌며 세몰이에 나섰다. ‘군인-교사-미식축구 코치’ 경력의 팀 월즈 미네소타…
팬데믹 영웅에서 ‘초현실적인’ 착취 대상으로
2024년 6월 말, 한 미혼 여성이 중국 산시성 셴양의 세 들어 살던 아파트에서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1991년생으로 만 33살인 그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서부지역 닝샤 출신의 후이족 여성으로 밝혀졌다.…
케이팝 들었던 미얀마 소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2023년 7월, 미얀마의 우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나는 동료와 함께 라카인주 부티다웅의 한 실향민 캠프에서 트웨 아줌마를 만났다. 아줌마의 가족은 2019년 미얀마군과 라카인주의 무장단체인 아라칸군 사이의 전투로 집과 마을을 잃고…
어서 오세요, 관념적 맛·공간·시간의 편의점에
요즘 너무 더워 간단한 조리조차 엄두가 안 난다. 편의점과 마트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잦다. 오늘도 편의점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냉장 매대를 살핀다. 오, 돼지강정. 몹시 허기진데다 예상 가능한 맛이라…
에너지 드링크로 밤샘? 창업가에겐 비타민 필요해
영화를 보면 주인공만큼 기억에 남는 조연이 있다. 이들이 없으면 영화는 얼마나 심심할까. 내 인터뷰는 항상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창업을 다루는 언론도 주인공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다. 창업가들의 마을 ‘논스’에…
장거리 달리기, 인류가 최상위 포식자 된 이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 앞에 조성된 황영조 기념비. 신동호 제공 마지막 나무의 가지 하나가 뜨거운 한낮으로 부서진다. 메뚜기떼처럼, 건조한 바람이 사바나의 수분을 모조리 데려간다. 눈물을 잃고, 마지막 열매는 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