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말, 한 미혼 여성이 중국 산시성 셴양의 세 들어 살던 아파트에서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1991년생으로 만 33살인 그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서부지역 닝샤 출신의 후이족 여성으로 밝혀졌다. 정확한 사인이 발표된 건 없지만, 정황상 아사로 짐작된다. 이 여성의 죽음이 알려진 건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인 8월16일이다. 중국 내 가장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인 위챗 공식계정(公众号·중국식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통해서다. “한 외지 여자가 내가 세놓은 월세 아파트에서 죽었다.”(一个外地女孩,死在了我出租的公寓) 이 글을 쓴 사람은 그 여성에게 세를 준 아파트 주인이다.

중국 사회의 모순을 압축한 한 여성의 죽음

2024년 4월 말부터 그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여성은 베이징 소재 한 명문대학 졸업생이었다. 닝샤 출신인 여성은 집안의 희망이자 고향 마을의 자랑이었지만 졸업 이후 번번이 구직에 실패했다. 몇 년에 걸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왔고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지만 항상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생활비는 가난한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해결하며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으로 아등바등 살아야 했다. 팬데믹과 경제난, 그로 인한 실업자 증가와 청년 실업률 급증 등으로 구직의 꿈은 더 멀어져만 갔다. 여성은 차츰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듯했다. 그는 집주인을 제외하고, 가족을 포함해 모든 사람과의 연락을 차단한 채 월세방에서 혼자 죽어갔다. 전기마저 차단된 냉장고는 텅 빈 상태였고 아무런 생활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의 죽음은 뜻밖에도 반향이 아주 컸다. 가장 가난한 지역 농촌 출신의 베이징 명문대 졸업생, 공무원 시험과 구직에 실패한 미혼 여성, 월세방에서 아사로 추정되는 죽음 등 현재 중국 사회의 온갖 사회문제와 모순을 한꺼번에 압축한 여성의 삶과 죽음이 공분을 일으켰다. 가난한 농촌 출신 계급이 기댈 희망이라곤 ‘학벌’밖에 없는데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 명문대를 나와도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고 필기시험 1등을 해도 매번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공무원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탕핑’(躺平·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눕는 것)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죽어라 공부만 했을 뿐인데 결국 인생의 낙오자가 돼야 한다면 가난한 계급 출신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느냐며 분노했다. 부정적인 반응도 제법 있었다.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왜 다른 방향을 모색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이 쓴 수많은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무원이 되는 길 말고 다른 살길은 진짜 없었나? 사정이 그렇게 궁하면 가난한 부모님을 등쳐먹을 게 아니라 배달기사라도 해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았을까? 요즘 대학 나온 청년 중에 배달기사를 해서 먹고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영화 ‘역행인생’ 포스터.

불황과 감원, 최적화 대상 되어 역주행 인생 사는 ‘늙은 노동자’들

45살의 까오즈레이는 중국 빅테크 대기업에 다니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는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같이 사는 부모는 소일거리 삼아 집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한다. 하나 있는 딸아이는 국제학교 입학을 눈앞에 둔 상태다. 팬데믹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모든 기업마다 해고와 감원 열풍이 불었지만 까오즈레이는 한 번도 자신이 감원 대상이 될 것이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한 회사에서 ‘감원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여기서 일한 게 십 년도 넘는데 하루아침에 날 쫓아내다니,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해고의 운명은 뒤집히지 않았다. 그는 하루아침에 번듯한 대기업 사무실에서 차가운 거리로 쫓겨났다. 그가 회사에 있을 때 책임지고 했던 일은 배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배달 시간 등을 최대한으로 줄여 기업 이윤을 최대화하고 비용 효율성을 이룰 ‘최적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 역시 기업의 ‘최적화’ 대상이 되어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45살이라는 나이는 위로는 연로한 부모를 보살펴야 하고, 아래로는 한창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며, 아직 남아 있는 아파트 대출금도 마저 갚아야 한다. 살면서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다. 바로 그때 실직한다는 것은 중년의 위기를 넘어 인생의 심각한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까오즈레이가 맞닥뜨린 현실도 딱 그랬다. 연로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갑자기 병원비로 목돈이 필요하고 국제학교에 다녀야 하는 딸아이의 학비도 마련해야 한다. 상하이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국내 굴지의 빅테크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까오즈레이는 자신의 능력과 경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새 직장을 찾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때마침 찾아온 경제 불황과 기업의 감원 열풍은 구직시장에서 ‘늙은 노동자’ 취급을 받게 된 그에게 더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취업 브로커에게 사기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뒤에야 그는 자신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당장 먹고사는 일이다. 고학력 전직 프로그래머 출신인 45살의 중년 실직자 까오즈레이가 까다로운 서류나 면접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배달기사(外卖骑手)다. 그의 ‘역주행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2024년 8월 초 중국 전역에서 개봉돼 수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은 중국 영화 ‘역행인생’(逆行人生)의 줄거리다. 그러나 배달기사라는 직업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달기사란, 그들을 통해 최대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갖가지 최적화된 착취 프로그램이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자본의 착취 집약적인 직업 세계였다. 예전에는 중국 대도시 주민들이 가장 멸시하던 사람이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는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일하러 오는 노동자)이었다면 지금은 배달기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었던 제조업 중심의 노동집약적인 경제구조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경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전의 농민공들은 대부분 플랫폼에 소속된 배달기사라는 ‘신형 직업군’ 노동자가 됐다. 까오즈레이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배달기사를 착취하는 최적화 도구로 쓰이는 현장을 경험하면서 배달기사라는 직업 세계에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된다.

팬데믹의 영웅에서 초현실적인 착취 대상으로

영화 ‘역행인생’이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경제불황으로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전락한 중국 도시 중산층들의 역류하는 인생과 마치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작금의 중국 사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년 실직자든 청년 실업자든, 아니면 경력 단절 여성이든지 간에 누구나 쉽게 당장의 호구지책으로 선택하는 직업인 배달기사가 실제로는 어떤 ‘초현실적인’ 착취 상태에 놓여 있는가다. 그들은 플랫폼이 계산해놓은 배달 시간 프로그램에 따라 거리당 최단시간으로 배달 업무를 완수해야만 하고, 시간 초과시에는 벌금을 낸다.

고객이 별점 테러를 해도 노임에서 깎이기에 배달기사들은 고객의 쓰레기 수거도 마다치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맛있게 드십시오. 만족하시면 별 다섯 개 평점 부탁드려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교통신호를 밥 먹듯이 어기고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플랫폼 앱이 깔린 스마트폰에서 “곧 배달 시간이 초과하니 서두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지옥문 앞까지 갔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시 전동 오토바이를 몰고 쌩쌩 달려야만 한다. 월말과 연말 등 분기별로 ‘배달왕’에 뽑히면 두둑한 상금을 받고 좀더 쉬운 배달 거리와 업무를 배당받기 때문에 배달기사들은 목숨은 운에 맡기고 ‘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매일 거리를 질주하는 폭주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운이 좋으면 ‘배달왕’이 되어 상금을 받지만 운이 나쁘면 트럭에 치이거나 깔려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를 잃을 수도 있다. 착취와 멸시는 덤이다.

2020년 3월 중국의 배달원을 팬데믹 영웅으로 보도한 ‘타임’ 보도 사진. 타임지 누리집 갈무리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19일 발행된 미국 시사잡지 ‘타임’의 표지모델은 각국의 팬데믹 영웅들이었다. 중국의 팬데믹 영웅으로 선정돼 표지모델을 장식한 인물은 뜻밖에도 베이징의 한 배달 플랫폼에 소속돼 일하던 배달기사 가오즈샤오다. 그 역시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닝샤에서 올라와 대도시의 떠오르는 ‘신형 직업군’인 플랫폼 배달기사로 취업해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찾아왔고 그는 사람들이 사라진 베이징 거리를 온종일 질주하며 팬데믹 기간 내내 도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상용품들을 곳곳으로 배달했다. 그와 함께 당시 우한에서 배달기사로 일하던 리펑제의 사연도 함께 소개됐다.

‘타임’은 중국 팬데믹 기간 동안 가오즈샤오와 리펑제 같은 배달기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이 표지기사가 나간 뒤, 중국 내 수많은 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감염 공포를 뚫고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배달해주는 배달기사를 영웅으로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팬데믹 기간 동안 독거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 등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을 것이라 했다. 그 영웅들은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2024년 8월12일, 항저우의 한 고급 아파트촌에서 앳돼 보이는 얼굴에 몸이 비쩍 마른 한 배달기사가 건장한 보안요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파문이 일었다. 그 배달기사는 플랫폼 앱이 알려준 경로를 따라 이동했지만, 아파트 앞 난간에서 막힌 뒤 오토바이를 세워 난간을 가로질러 가려다 실수로 난간을 훼손하고 말았다. 곧바로 건장한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를 제지했고, 난간 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배달기사는 곧바로 그 경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그의 스마트폰 속 플랫폼 앱에서는 다음 주문 건에 대한 ‘시간 초과’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빨리 배달을 완수하고 다음 주문 장소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 장면이 찍혀 소셜미디어에 퍼지자 성난 동료 배달기사들이 그 아파트 앞으로 몰려들어 “사과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집단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동영상은 하루 뒤 중국 내 모든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 돌연히 사라졌다. 애초에 무릎 꿇은 배달기사 신분이 19살의 여성 대학생이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배달기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영상이 사라지면서 그에 관한 후속보도나 소식도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월세방에서 죽어간 여성에 관한 글도 게재 후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배달기사라도’로 뒷걸음치는 중국 사회와 중국인들

잡지 ‘삼련생활주간’ 8월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중국에서 일하는 각종 배달기사는 1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디디추싱과 같은 인터넷 공유 예약차량 기사로 일하는 사람은 600만 명이 넘었다. “계속 증가하는 이 두 직업군은 현재 많은 실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 됐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라고 기사는 말하고 있다. 중국 사회와 경제도 거꾸로 흐르고 있고, 중국인들의 인생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배달기사라도’ 하지 못해 월세방에서 홀로 죽어갔던 33살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어떤 구체적인 절망의 사연을 품고 죽어갔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살아 있었다면 그도 무릎을 꿇는 ‘배달기사라도’ 하고 있었을까. 다만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