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은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이제 우리가 알던 미국은 더 이상 없다. 트럼프는 11월6일(현지시간) “우리나라(미국)의 모든 것을 고칠 것”이라고 강조했고, 브레이크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행정부는 물론 상·하원을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렇게 트럼프의 미국은 지금까지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요동치게 할 게 틀림없다. 트럼프가 재입성한 백악관은 저 멀리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 군사 분야는 물론 경제와 문화 등에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한국의 번영과 평화를 가능하게 했던 핵심 요인인 자유주의 질서와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한미동맹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우리가 트럼프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부르고, ‘트럼프 리스크’라고 우려하는 핵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트럼프의 시대에 올라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사실상 신의 영역이었다면, 트럼프가 내년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까지 트럼프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해 대비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다. 대한민국의 생존 및 번영과 직결되는 일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사저널은 트럼프 시대에 닥쳐올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무엇은 꼭 하고’ ‘무엇은 꼭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전문가 6인에게 물었다. 냉철한 판단을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고, 차가운 머리로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시사저널은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해온 학자들은 물론 공직을 맡아 미국은 물론 북한 등과 두루 협상해본 전문가들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트럼프 시대의 기준점은 이념과 도덕, 가치 대신 ‘철저한 국익’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이 워낙 큰 만큼 안전벨트를 단단히 맨 채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연한 사고와 전략 속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정부가 맺었던 모든 협약이 다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대비해야 한다(하상응 서강대 교수)” “트럼프 시대에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스스로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리는 것(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등의 조언이 나왔다. “트럼프 리스크라는 위기를 어떻게 피할지에 가장 좋은 데이터는 ‘트럼프 1기’의 경험이니만큼 이를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이준한 인천대 교수)” “트럼프 개인과 최측근을 상대로 끈질긴 관계 구축 노력을 벌이는 동시에 인정욕구가 큰 트럼프를 상대로는 ‘감성적 접근’을 해야 한다(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제언도 나왔다. 트럼프가 4년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도 많았다.
트럼프가 앞으로 제기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슈는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올 사안들이다. 그가 제일 먼저 거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슈는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올해 분담금(약 10억 달러)의 10배에 달한다. 이에 트럼프가 한미 정부가 최근 타결한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이와 관련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트럼프가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거의 확실하게 거론할 것”이라면서 “이번에 합의된 SMA 내용을 폐기하자고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 이사장은 트럼프가 방위비분담금 재협상 테이블에 주한미군 축소나 철수 이슈를 같이 올려놓고 둘을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윤 이사장은 “방위비분담금과 관련해 트럼프는 재조정 요구를 할 텐데, 어떤 형태로든 조정 가능성이 있는 주한미군 관련 문제와 서로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이 만족할 만한 호응을 우리 측으로부터 받아내는 경우에는 주한미군 이슈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교부 북미국장과 한미방위비분담협상 대표를 지낸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가 유독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과 미군 철수 문제를 자주 거론하는 것은 한미동맹 체제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역시 “한국은 여태 한반도 방어에만 몰두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대의에 반하는 행보를 계속하면서 미국 조야에서 ‘한국은 미국에 안보를 무임승차하며 경제적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국가’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다”며 “트럼프 2기에도 한국이 기회주의적인 선택을 계속한다면, 한국의 설 자리는 대폭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병제 전 원장은 “트럼프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트럼프가 원래 모든 것을 거래의 관점에서 본다고 하지만, 그의 목표가 한국에서 방위비분담금 몇억 달러를 더 받아내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국이 신중하고 전략적이지만, 책임 있고 단호하게 자기 안보를 챙겨나감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의달 교수는 “한국은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의 수호·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참여와 기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北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거래할 수도
트럼프는 과연 김정은을 다시 만날까. 트럼프 시즌2에서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이벤트는 북·미 정상회담, 그 핵심 의제에 오를 북핵 문제일 것이다.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핵 협상이 다시금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된다면 우리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과 특별한 친분을 과시했던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노리고 한반도 종전선언 같은 행보로 김정은과 극적인 통 큰 합의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의 의지와 다르게 트럼프가 추가 핵무기 생산·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력 확대를 중단하는 대가로 북한에 제재 완화를 포함한 경제적 지원 등을 제공하는 주고받기식 거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한반도 재래식 전쟁 방어는 한국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주한미군의 주임무를 중국 억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트럼프는 협상이라는 명목 아래 한반도 안보의 핵심이었던 북핵에 대항한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 체제도 흔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 트럼프가 대북 협상에 직접 나설 여지가 있다고 봤다. 하상응 교수는 “트럼프가 대북 협상에 나선다면 그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면서 “양자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의 뜻과 달리 ICBM 등 미 본토의 공격 여지를 제거하는 방식만을 거래로 삼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정원 출신 안보 전문가인 조경환 교수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굉장한 파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병제 전 원장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돌아간다면 김정은과 대화 재개를 시도할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북·미 정상회담으로 발전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윤영관 이사장은 “트럼프는 북핵 문제의 일정한 해결을 외교적 업적으로 남기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 비핵화 문제의 향배도 사실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성패에 대해선 비관적 시선이 많았다. 조병제 전 원장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핵역량이 대폭 강화된 만큼 북·미가 최고위급에서 만나더라도 비핵화에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에게 ‘한국은 북핵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경환 교수는 “우리는 북핵을 짊어지고 생존을 할 수 없다”며 “트럼프가 대북 협상에 나설 때 우리는 절대 ‘북핵 용인’ 카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다각도 채널로 아주 분명하게 전달하고 확인받아야 한다. 이건 동맹으로서 절대 물러설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경환 교수는 ‘현실주의자’로서 이념과 가치, 도덕이 아닌 실용과 국익을 우선하는 트럼프 시대에 ‘가치외교’를 중시했던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의 전환도 당면한 과제로 짚었다. 조 교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맞춰서 우리가 대응하려면 외교·안보 기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지금의 외교·안보라인으로는 대응이 부족해 보인다. 충분한 대비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외교·안보라인의 교체를 통한 외교·안보 기조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