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하 속도는 금융안정 등 정책 변수들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내수 부진 등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14일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여야 의원의 질의는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인하한 배경 등에 집중됐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가 너무 늦었다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지적에 대해 집값·가계부채 급등세를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답했다. “7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당시 부동산 가격이 빨리 오르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도 너무 빨라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주지 않기 위해 쉬었다가 내린 것”이라면서다. 그러면서 “지금 금리를 적절한 속도로 조절하고 있다고 보고 금융시장이 변화하는 상황을 보고 추가로 속도를 조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빅 컷(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에 나서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 총재는 “0.50%포인트를 인하하면 부동산 수요층이 ‘이제 부동산을 살 시기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기대심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가계부채 대응이 늦은 탓에 집값이 뛰고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이 늦춰진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5~6월 당시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데이터로 크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때만 해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이 주요 과제였고,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등 복합적 원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시경제금융회의(F4 회의)에서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부채가 올라가는 시점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후적으로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이 연기되면서 정책 혼선이 빚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F4 회의에서 (시행 연기를) 논의한 것인 만큼 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내수 부진 등 문제에 대해 “기준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러 구조적인 요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다. 최근 한은은 저출산 고령화, 지역 불균형 발전 등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이 약화한다고 보고 각종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날도 이 총재는 한은이 지역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 제안한 ‘지역별 비례선발제’ 입시제도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이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을 언급하자, 이 총재는 “전 세계 어느 대학도 한 지역에 있는 학생만 그렇게 많이 뽑지 않는다”며 “우리 대학이 한 지역에 있는 사람 말고,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을 꼭 뽑는다는 생각만 가지면 제도를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금통위원들의 업무를 챗GPT로 대체하자”(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제안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10월 금리 결정과 관련해) 챗GPT를 써봤는데, 기준금리 동결이 최선이라고 했다”며 “우리(금통위)가 금리를 낮춘 것을 보면 역시 챗GPT는 믿을 수가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