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김영두 경위(37)는 지난 8일 교제폭력범죄 특별법 제정의 중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김 경위는 지난 8월31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치안정책리뷰에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과 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글을 실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는 집계를 시작한 2017년 3만6267건에서 지난해 7만71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 7월에는 한 유명 여성 유튜버가 연인 관계였던 남성으로부터 4년에 걸쳐 폭행을 당하고 수십억원을 빼앗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김 경위는 14년 전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11년 동안 여성·청소년 범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에 여성청소년과를 두고 교제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등 여성·청소년·아동·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응한다.

김 경위는 교제폭력의 핵심이 행위가 아닌 관계라고 분석했다.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고 재범 위험성도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제폭력의 경우 관련 특별법이 없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강제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 경위는 “교제폭력 범죄는 스토킹에 해당하는 정도가 아니면 엄정하게 대응하기 힘든데 지난해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한 살인사건 764건 중 피해자가 동일범에게 교제폭력 등을 당한 사건이 20%(147건)에 달했다”며 “교제폭력을 강력 범죄의 전조 증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교제 관계는 오랜 시간 지속된 경우도 많아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다른 경우도 많다. 김 경위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처럼 교제폭력도 반복적으로 이뤄졌는지 일회성이었는지 사례마다 달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찰은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선제 조치를 진행하지만 법 제정 등 보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교제폭력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경찰은 2016년 교제폭력을 ‘데이트 폭력’으로 부르며 교제 중이거나 교제한 적 있는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발생한 범죄로 규정했다. 여성가족부는 2018년 데이트나 연애 목적으로 만나고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 관계로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호감을 가진 상태에서 일어난 범죄도 교제폭력에 포함된다고 정의했다.

여성가족부와 경찰 등은 다만 공권력이 개입해 처벌해야 할 범죄에 해당하지만 연인 사이의 사적인 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2022년부터 데이트 폭력 대신 교제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 중이다.

김 경위는 “교제폭력의 법적인 개념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정의가 모호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나 수사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결국 피해자 보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밝혔다.

김 경위는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과 함께 교제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강조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가정폭력에 경찰이 개입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처럼 교제폭력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경위는 “연인 사이의 사소해 보이는 교제폭력이라도 더 큰 범죄나 심각한 위협을 주는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한 첫걸음이 특별법 제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2016년 APO(Anti-Abuse Police Officers·학대 예방 경찰관) 직책이 신설됐을 당시 서울 광진경찰서 APO로 활동하면서 피해자 지원 업무를 맡았다. APO는 경찰 조사가 이뤄진 뒤 피해자와 계속 연락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이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를 거쳐 신임 경찰관을 교육하는 중앙경찰학교에서 여성·청소년 범죄 담당 수업을 하는 교수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소속으로 상담 전문 대학원을 다니며 피해자 보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김 경위는 교제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경위는 “가만히 있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며 “만성적인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일상생활을 하기조차 힘든 분들이 일상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피해자 중심 경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