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모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정책 현안으로만 가득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과방위는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AI(인공지능) 정책에 대한 질의와 국감 단골 주제인 가계통신비 인하 문제, 유럽에서도 논의가 뜨거운 글로벌 빅테크 과소 납세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R&D(연구개발) 예산과 과학인재 육성 정책에 대한 논쟁도 뜨거웠다.
AI 필수 조건 데이터센터·GPU 확보 필요성에 뜻 모아이날 가장 뜨거웠던 주제는 단연 AI였다. 의원들은 AI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설립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성형 AI 시대에 꼭 필요하지만, 혐오시설로 인식돼 설립이 어려워진 데이터센터의 신설이나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필수 장비 확보에 대한 대책 마련 필요성도 논의됐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원자력발전소 유치가 어렵듯 데이터센터도 송전선로 등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유해시설로 인식돼 유치가 어렵다”며 “그러나 유해성이 굉장히 낮고,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시설인 만큼 대국민 인식 개선이나 유치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 장관은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광주 국가AI데이터센터 사례를 언급하며 “광주는 너무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찬성해서 데이터센터 유치에 성공했다”며 “(광주에) 기업들이 실제로 와서 데이터센터를 쓰는 모습을 본다면 (데이터센터가) 혐오시설로 부정 당하거나 저항을 받는 문제는 상당히 완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학습·연산을 위한 필수 조건인 GPU 확보에 대한 전략도 내놓았다. 우리나라가 확보한 GPU는 2000장 수준인데,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옛 페이스북)는 약 15만장, 구글·아마존·중국의 텐센트는 5만장을 확보한 상태다. 정부도 최근 발족한 국가AI위원회를 통해 2030년까지 3만장의 GPU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유 장관은 “컴퓨팅 인프라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엔비디아의 GPU로 데이터센터를 계속 만들면서 이를 대체할 차세대 NPU(신경망처리장치)를 개발하는 투 트랙 전략을 갖고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간 차원에서도 65조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과학기술 수준이 2022년,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것과 관련한 질타도 있었다. 이에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은 “최소한 AI는 한번 경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자기술 분야와 관련해서는 인재 양성 등 취약점을 빠르게 보완하겠다고 했다.
LTE·5G 요금 역전, 스팸 문자 방지…국민 통신 만족도 제고해LTE 요금제가 5G보다 비싼 ‘역전현상’이 발생해 LTE 요금제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이통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제도 및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청이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LTE가 5G에 비해 5분의 1 정도 속도가 느린데, 중저가 요금제나 무제한 요금제에서 가격 역전이 일어났다”며 “1300만명에 달하는 LTE 사용자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통3사 모두 관련 문제에 대해 공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봉호 SK텔레콤 커스터머사업부장은 “지난해 11월 LTE 단말 사용 고객도 기가바이트(GB) 당 단가가 낮은 5G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면서도 “전체적인 요금 개편 때 이같은 부분에 대해 잘 참고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섭 KT 대표도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면적인 조사를 상세하게 해서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수헌 LG유플러스 컨슈머부문장도 “역전현상이 일어난 LTE 고객들을 5G로 옮기는 부분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불공정 R&D 예산 복원·과학기술계 갑질 의혹도 도마에지난해 국감을 뜨겁게 달궜던 R&D(연구개발) 예산과 과학인재 육성 정책을 놓고 정부가 더 확실한 방향성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대통령 관심사에만 예산이 몰리는 형태로 예산을 복원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이거야말로 R&D 카르텔 양산소”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김형숙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심리뇌과학전공 교수(한양디지털헬스케어센터장)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수주한 초거대 AI 기반 서비스 연구 과제를 예로 든 것이다. 이에 유 장관은 “예산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대형 과제부터 철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대 열풍으로 인한 과학기술인재 이탈 문제를 꼬집었다. 이 의원은 “자체적으로 의과대학을 전수조사한 결과 신입생의 20~30%가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이라며 “4대 과학기술원 중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경우 신입생 충원율이 87.5%, 울산과학원은 83.4% 수준”이다. 이공계 이탈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서는 과기정통부 소관기관인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 일어난 각종 갑질·비리 의혹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직원 성희롱 및 인사 갑질 의혹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기정통부 산하 기관에서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
박 의원은 “현 소장만 7년째 재임 중인데, 아태이론물리센터가 장기간 과기정통부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7월 소장의 폭력 행위가 발생했고, 상임이사 보수 지급 규정 개정 등 이사회 사유화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에 유 장관은 “근래 과학기술 쪽 리더십이 보여야 하는 도덕성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되는 행위들이 자꾸 노출돼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관리·감독기관으로서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히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력단절·불균등한 기회 등 국내 과학기술계 여성 연구인력양성을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한 약속도 있었다. 유 장관은 “공대나 자연과학대에 진입하는 여성이 20~30% 수준인데, 굉장히 중요한 자원임에도 계속해서 연구개발 쪽 인력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적극적으로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