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지식재산권(IP)을 지키기 위해 제기한 표절 소송에서 1승1패의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23일 엔씨가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하면서다. 2023년 엔씨와 웹젠의 표절 소송에서 법원이 엔씨의 손을 들어준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법조계는 이번 소송의 결과가 IP를 둘러싼 향후 국내 게임사 간 법정 공방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는 지난 23일 엔씨(원고)가 카카오게임즈와 개발 자회사 엑스엘게임즈(피고)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등에 대한 청구의 소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 비용도 원고가 부담해야 한다.
앞서 엔씨는 카카오게임즈가 출시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키에이지 워’가 자사의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면서 2023년 4월 소를 제기했다.
당시 엔씨는 아키에이지 워의 사용자환경(UI)을 비롯해 스킬 연계, 클래스(직업) 및 아이템 강화 시스템 등 게임 전반적인 구성 요소를 장르적 유사성을 벗어난 수준으로 리니지2M의 콘텐츠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키에이지 워가 여느 MMORPG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시스템과 UI 등을 사용했고, 이러한 게임 속 구성요소가 리니지2M만의 독창적인 창작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엔씨가 클래스, 아이템 강화, PvP(플레이어 간 대결) 등 리니지2M 속 구성요소와 진행방식이 창작적 개성을 가진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선행 게임에서도 유사한 방식이 이미 존재한다”며 “위와 같은 구성요소 및 게임 규칙 등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는 공통적, 전형적 요소로, 이른바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부정경쟁행위 위반에 관련해서는 “아키에이지 워가 전형적인 MMORPG 게임의 요소에 해당하므로 리니지2M을 완전히 구현하거나 모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부정하게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엔씨 측이 항소의 뜻을 밝혀 고등법원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엔씨는 이전에 웹젠을 상대로 제기한 비슷한 쟁점의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재판부는 2021년 웹젠의 ‘R2M’이 엔씨의 ‘리니지M’을 모방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엔씨 손을 들어줬다.
이철우 게임전문 변호사는 31일 국민일보에 “이번 소송 과정에서 ‘리니지라이크’로 불리는 MMORPG의 공통적 요소(클래스-무기-스킬 각성 연계 시스템, 아이템 강화/컬렉션 시스템 등)가 여러 선행 게임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두 소송 중 독창적인 요소가 거의 없어 보였던 R2M과 달리 아키에이지 워에서는 무역, 해상 전투, 함선 건조, 계승자 기술/연쇄 기술 등 이 게임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판단을 달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년래 여러 갈래로 제기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관한 소송의 결과가 속속히 나오는 만큼 판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IP 보호를 목적으로 한 게임사 간 법적 분쟁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고 앞으로 더 많은 소송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근래 가장 주목하는 건 넥슨과 아이언메이스의 소송이다. 넥슨은 아이언메이스가 자사의 미공개 프로젝트 ‘P3’의 소스코드와 개발정보를 무단유출해 ‘다크앤다커’를 개발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4차례 변론을 진행했고 다음달 13일 첫 판결이 예정돼있다.
엔씨는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 중인 ‘롬’도 표절 사유로 소송을 제기해 1차 변론을 마친 상태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4월18일이다.
이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MMORPG 속 구성 요소 등이 리니지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리니지와 비슷한 특징을 지닌 MMORPG와 관련한 사건에 중요한 근거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특히 롬에 대한 카카오게임즈와 엔씨의 2차전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다크앤다커는 중세 다크 판타지 배틀로얄이라는 특이한 장르성과 성과 무단 도용 이외에도 ‘영업비밀의 무단 탈취 및 침해’가 주요 쟁점”이라면서 “이 사건은 엔씨-카카오게임즈 소송 결과가 참고될 수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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