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장애나 우울증 같은 신경정신질환이 늘고 있다. 아직 이 질환들에 대한 치료법은 제한적이고, 존재하는 치료약조차 약 50%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뇌과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LSD나 암페타민 유도체 같은 환각제가 가지는 항불안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환각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약물 의존성과 다양한 정신적·신체적 부작용을 만든다. 그럼에도 환각제는 항불안 기능도 갖기 때문에 해당 기능만을 높이고 부작용은 줄여보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항불안 기능과 환각 작용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 항불안 기능과 환각 작용이 동일한 뇌 원리를 활용한다면 아무리 더 나은 약을 만들더라도 결국에는 순기능과 부작용이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우선 이와 관련한 뇌과학 연구 설명에 앞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환각제는 부작용이 순기능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 없이는 손댈 수 없는 위험한 약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의 크리스틴 김 교수 연구진은 최신 뇌과학 기법을 활용해서 환각제와 항불안 기능의 관계를 규명했다. 먼저 연구진은 개량된 환각제인 ‘2.5-디메톡시-4-요도암페타민’의 지속 시간에 주목했다. 생쥐에 해당 환각제를 주입하면 30분 정도 지나 체내에 최대로 흡수되고, 4시간 정도면 대부분 몸 밖으로 배출됐다. 다음날이면 주입된 환각제가 몸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환각제가 주입된 생쥐의 행동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생쥐가 사는 케이지 바닥에 ‘깔집(톱밥 등으로 만든 일종의 장판)’을 넣어주고 구슬을 올려두면 생쥐는 자신이 불안할수록 구슬을 더 빨리, 더 많이 깔집 아래로 묻었다. 사람이 손톱을 물어뜯는 것과 비슷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생쥐는 환각을 보면 머리를 틱틱 꺾는 행동을 한다. 사람이 환각을 보면 허공을 갑자기 쳐다보듯이 말이다. 환각제 흡수가 최대치에 이른 시간에 생쥐는 불안이 감소하고 환각은 증가한 양상을 보였다.
주목되는 것은 환각제가 몸에서 대부분 사라진 주입 6시간 뒤였다. 생쥐 행동을 다시 한 번 검사했더니 불안은 여전히 감소한 반면 환각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에 따라 항불안 기능과 환각 작용을 분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연구진은 항불안 기능과 환각 작용이 뇌세포 수준에서 분리돼 있는지를 탐구했다. 연구진은 미국 소재 막스 플랑크 플로리다연구소의 린 시안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빛을 쬐어서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유전적으로 표지하는 기술을 활용했다. 환각제를 주입하면 전전두엽에서 특정 종류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데, 이 기술을 통해서 환각제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연구진이 언제든 켤 수 있도록 조작했다. 그리고 환각제가 몸에서 완전히 사라진 시간에 해당 신경세포들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했다. 그 결과 항불안 작용은 발휘되었으나 환각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항불안 작용과 환각 반응을 뇌세포 수준에서 구분해 낸 것이다.
이번 연구는 환각제의 좋은 작용과 나쁜 작용이 뇌의 다른 신경세포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규명한 것에 의미가 있다. 항불안 작용만을 특화하기 위한 과학적·논리적 근거가 제시된 것이다. 뇌과학적 연구가 더 많은 사람을 불안장애에서 구할 수 있는 약물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