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4년만에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옴으로써 그가 이끄는 미국의 향후 행보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상·하 양원 다수석을 공화당이 차지해 트럼프의 독주체제가 강화된 데다, 극단적 성향의 인물들이 속속 트럼프 행정부에 등용되고 있어 미국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가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예컨대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중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공언한 데 이어, 보란듯이 기후위기 부정론자인 석유기업 최고경영자를 에너지장관에 지명했다.
세계 지정학의 새로운 대결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주 분야에선 트럼프의 재등장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장조사업체 유로컨설트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우주 관련 예산은 732억달러(102조원)다. 다른 모든 나라의 우주 예산을 합친 금액(438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2위인 중국의 140억달러(19조원)의 5배를 넘는다. 따라서 미국이 어떤 우주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세계 우주 개발 경쟁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우주는 트럼프가 역점을 두는 정책 부문 가운데 하나다. 그는 첫번째 임기 기간 중 우주정책 지침을 7차례나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가우주위원회를 14년만에 재가동하고 우주군을 창설하는 한편, 아폴로 이후 반세기만에 새로운 달 유인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를 시작하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우주군 창설을 자신의 임기 중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로 평가했다.
둘 다 그 이전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기는 하지만, 논의 차원에 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정책 결실에 속한다. 트럼프 1기 시절 국가우주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스콧 페이스(현 조지워싱턴대 우주정책연구소장)는 “트럼프의 재당선은 우주 분야에서의 미국 주도권이란 면에서 엄청난 승리”라며 “민간 우주 경제의 급성장, 더 강력한 미 우주군, 그리고 미국의 가치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형성할 달과 화성 임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사(미 항공우주국)에서 백악관 협력 업무를 담당했던 애리조나주립대의 그레그 오트리 교수는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는 아폴로 이후 최초의 유인 달 착륙 임무인 아르테미스 3호가 중국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우주정책의 기본 방향은 공화당이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확정한 정강정책에 집약돼 있다. 핵심은 “지구 근궤도에서 강력한 제조 산업을 건설하고, 우주비행사를 달과 화성으로 보내며, 빠르게 확장하는 민간 우주 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해 우주에 접근하고, 거주하고, 우주 자산을 개발하는 능력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총론을 어떻게 각론으로 전개해나갈까? 트럼프 우주정책의 향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2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해 작성한 ‘프로젝트 2025’ 보고서다. 트럼프 1기 시절의 행정부 관리 2명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우주산업을 이끌고 있는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그를 새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900쪽 분량의 ‘프로젝트 2025’는 차기 미국 행정부에 권고하는 정책 청사진이다. 시비에스(CBS) 방송 분석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서 담긴 700여개 정책 제안 중 최소 270개가 트럼프의 과거 정책 및 현재 선거공약과 일치한다. 트럼프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제안 내용 중 일부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로젝트 2025’는 방위 부문에서 우주군에 대해 공격적 전략을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우주군 정책은 분리, 복원 등 방어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우주군은 더욱 강력한 억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달 자원 및 탐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흐름을 반영해 미국 이외의 나라가 달에 군사적 거점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더 잘 감지하기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지구~달 우주공간’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트럼프의 최측근이 된 머스크의 목소리가 향후 우주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다. 머스크는 로켓과 우주선, 우주인터넷 사업을 하고 있는 우주산업의 직접 이해당사자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머스크는 이미 트럼프에게 스페이스엑스의 직원을 국방부를 포함한 행정부에 데려가 써달라고 부탁했다. 실현될 경우 우주사업과 관련한 머스크의 이해관계가 국방예산 등에 반영될 소지가 있다.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의 목적은 “정부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를 없애며, 낭비적 지출을 줄이고, 연방 기관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시한도 2026년 7월4일까지로 못박았다. 머스크는 이미 불필요한 기관과 인력, 절차를 줄여 정부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 2조달러 절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머스크는 우주산업과 관련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권고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스페이스엑스에 유리한 정책들이 입안되고 실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스페이스엑스의 시장 독점 문제를 야기하고, 경쟁업체들의 반발을 불러 정치적 갈등과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미국 정부가 예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 민간 주도의 우주사업(뉴스페이스) 방식이 성공한 데는 스페이스엑스의 역할이 컸다. 뉴스페이스란 정부가 기술이나 시스템 개발을 주도하지 않고 기업이 개발한 것을 구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스페이스엑스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등 전통의 우주항공기업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정부의 우주 임무를 수행했다.
머스크의 영향력은 달 유인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에까지 미칠 수 있다. 나사는 2030년대 화성 유인 탐사를 목표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후의 과제다. 반면 인류의 화성 정착을 내세우고 있는 머스크는 달이 아닌 화성에 중점들 두고 있다.
새로운 업적을 갈구하는 트럼프가 머스크의 ‘화성 직행’ 구상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미 첫 임기 때인 2019년 4월 소셜미디어 엑스(당시 트위터)를 통해 “나사는 이미 50년 전에 한, 달에 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고 화성을 포함한 더 큰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미 기술매체 아스테크니카는 “아르테미스가 어떻게 되든 적어도 화성을 달과 동등한 위치에 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향후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대한 스페이스엑스의 참여 폭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다. 머스크 시각에서 보면 아르테미스에 쓰이는 주력 로켓 에스엘에스(SLS)는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 1회성 소모품인 에스엘에스는 재사용 로켓인 스타십에 비해 발사 비용이 수십배 더 든다.
존 그로스던 조지워싱턴대 우주정책연구소 명예교수는 “트럼프 1기의 우주 정책은 안정돼 있었으나 머스크가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게 될 트럼프 2기에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머스크는 허풍선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일정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얼마 전 2026년에 무인 우주선 5대를 화성에 보내고, 이에 성공하면 2028년에 유인 착륙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 정책에서 그의 존재감이 강해질 경우 전통적으로 우주 탐사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온 기술적 장벽과 위험, 자금 조달 문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날 수 있다.
유인 우주비행을 포함한 당장의 우주 산업 수요에 밀려 우주 과학에 대한 장기 투자가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예산을 늘려온 반면 공화당은 그 반대였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1기는 나사의 주요 지구과학, 천체물리학 프로그램을 취소하려 한 바 있다.
게다가 이번엔 직접 이해당사자인 머스크가 예산 삭감의 칼자루를 쥐게 되는 상황이다. 세계 최고의 로켓 발사 능력과 미국 유일의 민간 유인 우주선을 갖고 있는 스페이스엑스는 나사의 두번째 큰 계약자다. 2023 회계연도 계약금액이 22억5천만달러(3조1천억원)에 이른다.
민간 우주기업에 대한 규제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머스크는 지난 9월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이 수천대는 돼야 하지만 스타십 프로그램은 정부 관료주의 산에 눌려 질식되고 있다”며 화성 청사진 구현의 가장 큰 걸림돌로 관료주의를 꼽았다. 그는 스타십을 발사할 때 적용하는 엄격한 환경 규정에 대해 “불합리하고 짜증난다”며 비판해 왔다.
따라서 우주 계약 담당 기관인 나사는 물론 원격 감지 위성을 규제하는 해양대기청(NOAA), 통신 주파수 할당과 우주 쓰레기 문제를 맟고 있는 연방통신위(FCC)에도 효율 제고를 명분으로 공급자인 기업을 중심에 둔 규제 완화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관 통폐합, 인력 감축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공교롭게도 미 연방항공청(FAA)은 최근 머스크가 줄곧 비판해온 로켓 발사 및 재진입 규제를 개선할 전담 위원회를 설치했다.
행성협회 우주정책부문 담당인 케이스 드라이어는 스페이스닷컴에 “스타십을 둘러싼 규제가 얼마나 완화될지를 포함한 미국의 우주 정책 방향은 궁극적으로 트럼프 백악관 내에서 머스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협력 분야에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해타산에 충실하고 우방국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격하고 돌출적인 발언도 위험 요소다.
중국은 이미 2030년 이전 달 유인 착륙, 2030년대 중반 달 기지 건설 등을 포함해 2050년까지 미국을 추월한다는 우주굴기 로드맵을 수립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와 어떤 식으로든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머스크의 영향력 아래 미국 우주 프로그램이 가속화할 경우, 미-중간 대립적인 우주개발 경쟁 구도가 더 강화될 수 있다.
중국 군사 전문가 쑹중핑은 “머스크의 트럼프팀 합류는 미국 항공우주 개발의 미래에 상당한 힘이 될 것이며 머스크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는 우리(중국)의 우주 개발에 거대한 시험과 같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미국의 아르테미스, 중국의 달 기지 건설은 현재 두 나라의 세력 규합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아르테미스 협정엔 48개국이, 중국의 달 기지 협정엔 10여개국이 서명을 한 상태다. 트럼프 시기에 세 불리기가 더 가속화할 수 있다.
블레딘 보웬 더럼대 교수(우주정치학)는 ‘더 컨버세이션’ 기고에서 “두번째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내 및 국제적으로 우주 정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겠지만 이는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에도 불구하고’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