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 국가전략기술 중심 투자에 이어 최근 과학기술계 화두는 ‘신속한 기술산업화’이다. 지난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연구개발) 결과물의 국민체감도를 제고하기 위해 ‘기술산업화 생태계 지원체계 고도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R&D 투자집중도와 대비되는 저조한 연구 생산성을 뜻하는 ‘코리아 R&D 패러독스’에 관한 이슈가 적극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발간한 ‘네이처 인덱스’ 한국 특집호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R&D에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투자 대비 성과는 하위권에 머문다”는 뼈아픈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지적에 재빠르게 반응한 기술산업화 생태계 지원체계 고도화 정책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기존에 주로 쓰던 기술사업화 대신 기술산업화라는 표현을 가져왔을까. 산업화라는 용어는 과학기술지식 활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차 산업혁명의 주요 특징인 기계·전기·화학공업 분야의 발전도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과 맞물려 과학기술지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응한 것에 기인한다. 당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 등의 대기업들은 과학기술지식의 생산을 위해 기업 내 연구소를 설치하고, 시장과 적극 교류해 투자하고 성장했다. 이러한 내용이 뜻하는 바는 과학기술지식의 산업화는 곧 ‘수요중심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공적 역할의 중요성이 대두한다. 지식경제학의 선구자인 애로우와 넥슬은 각각 “과학기술 성과물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1950년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대학 중심으로 기술산업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이뤄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출발과 맞물려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지식 축적이 활발히 일어났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지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 출연연 지주회사 및 TLO(기술이전·사업화 전담조직) 등이 기술사업화 전문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인공지능 기반 공공기술 사업화 지원 플랫폼 ‘아폴로’를 개발하는 등 공공기술 가치창출을 위한 생태계 주체로서 역할을 강화해왔고,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기술산업화 과정에서 이러한 공공기관들의 역할은 민간이 하기 어려운, 즉 불확실성이 크고 대단위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TRL 0~1단계(기초연구단계)의 산학연 네트워크를 통한 사회적 자본형성과 기술시장검증은 직접적인 이익 창출과 거리가 있으나 이를 통해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시장-기술 간의 갭, 시장-정책 간의 갭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자원은 과학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전문인력, 기술산업화 플랫폼 등의 대단위 인프라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술산업화 전략은 정량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한 투자를 넘어, TRL 0단계부터 생태계·인프라 중심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점진적으로 네트워크 안에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기술을 검증하고 완성해가는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 성공적인 딥테크(첨단기술)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런던의 지식지구와 같이 거점 중심의 생태계 내에서 공진화하고 있다. ‘사이언스 비즈니스’ 저자로 유명한 게리 피사노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지적재산의 단기적인 수익화보다 통합과 장기적인 학습에 더 중점을 두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조했다.

그간 우리나라의 기술사업화 분야는 단기간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량적 목표 중심으로 운영돼 온 경향이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공적인 역할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책 갭이 존재하는 분야로 남았다. 다행히 과기정통부가 기술산업화 전문기관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등 더 나은 정책을 내놓기 위해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과학기술지식의 사회경제적 파급력과 국민체감도를 제고할 수 있는 대한민국 기술산업화 전략이 꼭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