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국내 게임 시장을 술렁이게 했던 게임이 있다. 중국 신생 제작사 게임사이언스의 콘솔 게임 ‘검은신화: 오공’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 신화 서유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출시 나흘 만에 1000만장을 판매하며 흥행 반열에 올랐다. 동시 접속자 수는 한때 300만명을 뛰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오공에 “게임업계 사상 가장 빠른 1000만 데뷔작”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붙여줬다.
일각에선 게임의 판매량이나 동시 접속자 수가 내수에만 집중돼 있어 글로벌 흥행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초기 판매량의 80~90%가 중국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스팀 리뷰 내 중국어 비율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적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으나 아무렴 어떤가. 오공은 북미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던 콘솔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고, 모바일 강자로만 취급되던 중국 게임 산업의 현주소를 증명했다.
오공 외에도 여러 중국산 게임이 국내에서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다. 낚시성 콘텐츠를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빠른 속도로 사세를 넓혔는데, 금방 순위권에서 사라질 줄 알았던 게임들이 일 년 가까이 앱 마켓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기준 구글 게임 매출 톱5 중 3종이 중국 게임이다.
국내 게임사라고 손 놓고 안방을 뺏기고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 후 찾아온 산업 침체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전 흥행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하거나, 외부 파트너사와 협업을 모색하고 나섰다. 모바일·PC 위주의 플랫폼을 다변화하기 위해 트리플A급 콘솔 게임 개발에도 분주하다.
돌파구 마련을 위한 갖은 노력은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고 있다. 넥슨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국내 시장에서 불모지로 꼽혀왔던 루트슈터(슈팅+RPG) 장르를 앞세워 출시 직후 스팀 매출 1위를 달성하는 등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는 국내 게임사로서 최초로 소니와 독점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넷마블의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동명의 흥행 웹툰 IP를 활용해 두 달만에 150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외에도 네오위즈의 ‘P의 거짓’,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등 국내에서도 좋은 게임이 여럿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보다 산업 진흥에 힘써야 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어쩐지 쏙 빠져있는 모습이다. 지난 5월 발표한 ‘게임산업진흥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콘솔과 인디게임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세부 안건은 선도기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교과서적인 내용뿐으로, 구체적인 예산과 협의 근거는 없다. 외부에 공유된 진행 상황도 전무하다.
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현황 보고서에도 “콘솔·인디 게임 및 인공지능 활용 게임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미래 시장 선점을 돕겠다”고 기재했으나 구체적인 진흥 계획은 부재하다.
오히려 진흥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춘 역할 수행에 빠져있는 듯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확률형 아이템을 정조준하고, 관련 정보 표기 의무화 기준을 어긴 국내 게임사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게임 산업 자체에 관심이 시들해진 것 같다는 우려 어린 시선이 제기된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소환됐던 게임 이슈 참고인들이 연달아 참고인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번 문체위 국감에서 확정된 게임 관련 참고인·증인은 게임 관련 유튜브를 운영하는 김성회씨 한명뿐이다. 게임 관련 의제보다는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무게 추가 옮겨간 모습이다.
오공의 성공 신화로 중국 정부는 지난 8월에만 110여 종의 게임에 판호(서비스 허가권)를 내줬다. 그간 게임을 아편에 빗대 빡빡하게 규제해 오던 것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게임 산업의 가능성을 엿봐 이를 통해 경기 회복에 힘을 보태겠다는 구상이다.
용호성 문체부 1차관은 지난달 27일 일본 치바현에서 열린 도쿄게임쇼를 찾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장으로서 국내 게임쇼가 성장해 나간다면 도쿄게임쇼는 몇 년 내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도쿄게임쇼는 올해만 해도 전 세계에서 985개 기업과 단체가 참가, 세계 각지에서 몰린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며 그 위상을 입증했다. 용 차관의 발언처럼 국내 게임쇼가 몇 년 내 도쿄게임쇼를 능가하는 굴지의 행사로 자리잡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와 실질적인 지원은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