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동남부를 휩쓸며 대선 투표율 하락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가 피해 지역 주민들이 쉽게 투표하도록 규칙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는 투표 규칙 완화 내용이 담긴 ‘긴급 구호 패키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허리케인 피해를 본 25개 카운티의 지역 선거 위원회에 △투표 시간·장소 변경 △선거구 통합 △부재자 투표용지를 다른 카운티로 반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여러 권한을 부여한다.

이번 법안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가 제안한 조치가 상당수 포함됐다. 트럼프 캠프는 지난 8일 노스캐롤라이나 피해 지역에서 투표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10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이 중에는 폭풍으로 인해 이주한 유권자들이 선거 당일 다른 카운티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도 포함됐다. 트럼프 캠프 측은 성명에서 투표 접근성 개선은 “폭풍으로 이미 고통받은 사람들이 이번 중요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잃지 않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표 접근성 문제를 다루는 시민 단체 ‘민주주의 NC’ 측은 이번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피해 지역 복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거주지를 떠나있는 주민들이 많다”며 주 전역에서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공화당이 이끄는 주의회가 지난해 투표 제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이번 조치가 나온 점에 대해서 비판했다. 이번 조치가 공화당 지지 지역에 대한 선택적인 투표권 완화라는 지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당시 허리케인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홍수와 산사태로 지역 인프라 대부분이 파괴됐고 일부 마을은 완전히 고립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 관리자는 조기 투표소 10곳이 심각한 피해를 보아 접근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8만명 넘는 주민은 여전히 정전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헐린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곳이다. 노스캐롤라이나 관할 100개 카운티 중 헐린 이후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25개 카운티에서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얻은 득표율은 약 62%에 달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상대로 1.3%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이겼다. 선거 분석가들은 이 지역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카운티별 지지율 차이가 상황에서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피해 지역인 사우스캐롤라이나도 공화당에 불리한 상황이다. 한 공화당 관계자는 로이터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만~2만표를 잃을 것”이라며 “투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재난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는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개인 모금 행사에서 기부자들에게 피해 복구 활동에 기부할 것을 독려하며 “지역 인프라가 좋을수록 주민들이 투표소에 가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는 허리케인 ‘헐린’에 이어 ‘100년 만의 최악’이라는 허리케인 ‘밀턴’이 이날 상륙한다. 특히 ‘밀턴’ 상륙이 예고된 플로리다주 당국과 주민들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플로리다주는 공화당 우세지역이지만 과거 경합주로 분류됐던 만큼 허리케인 피해가 클 경우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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