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 변화에 나섰던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가 10일(현지시간) 폐막했다. 참가 기업들은 친환경을 겨냥한 전력 효율과 진보된 인공지능(AI) 가전을 선보였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미국 수출 길이 좁아진 중국 기업들은 TV 기술 등을 내세워 국내 기업들을 위협했다.

올해 전시도 핵심 주제는 AI였다. 챗GPT 출시 이후 만 1년이 안된 시점에 열린 지난해보다 AI 가전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올해 AI 가전이 지난해 대비 실효성, 합리성 면에서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독일 대표 가전 기업 밀레가 내놓은 리브 없는 세탁기가 대표적이다. 세탁기 통돌이에 돌출된 리브는 옷감을 상하게 하지만 세제와 세탁물을 섞이게 하는 필수 기능 때문에 제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밀레는 AI 기술을 활용해 드럼통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기술을 확보해 가전 업계의 오랜 고민인 리브를 제거했다. 이향은 LG전자 H&A사업본부 CX담당은 “그간 AI가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선언적인 것을 넘어 제품 실효성을 높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간 솔루션 형태의 AI 서비스가 두드러지기도 했다. 이는 개별 가전의 AI 기능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공간 단위로 가전을 관리한다는 개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스마트 홈 앱을 통해 여러 가전들의 설치 상황, 연결 상태 등을 한눈에 조망하게 하는 맵뷰 기술이 대표적이다. LG전자가 올해 전시 전면에 AI 홈 허브 ‘LG 씽큐 온’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트렌드의 연장선에 있다. 홈 허브를 중심에 놓고 연결된 가전들을 공간 중심으로 제어하겠다는 것이 LG전자의 구상이다.

삼성전자 전시관이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전시관이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기후 이상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에너지 비용이 요동치면서 고효율 가전 역시 올해의 핵심 키워드였다. 기업들은 최고 에너지 등급보다 효율을 높인 초고효율 가전을 갖고 왔다. LG전자는 A 등급보다 약 55% 뛰어난 효율을 갖춘 드럼 세탁기를 소개했다. 냉장고 신제품은 25%, 식기세척기 신제품은 20% 효율을 높였다. AI로 제품 사용 환경을 분석해 최적화 모드를 제공하는 ‘코어테크(핵심 기술력) 2.0’도 선보였다.

밀레의 신제품인 W2 노바 에디션 세탁기는 A 등급보다 20% 더 높은 에너지 효율을 IFA를 통해 강조했다. 의류건조기 신제품은 A+++ 등급보다 10% 에너지 효율이 높다. 세탁기에는 소량의 세탁물에 적은 물과 세제를 써 에너지를 아끼는 ‘스마트매틱’ 기능도 추가했다.

보쉬는 친환경 소재의 가전으로 탄소발자국을 50% 줄인 점을 내걸었다. 전시관 중심에는 잔디밭을 조성하고 곳곳에 나무를 소품으로 활용해 친환경 콘셉트를 분명히 했다. 하이얼 또한 냉장고, 세탁기 등 제품에 에너지 등급을 표기해 고효율 가전임을 강조했다.

입구부터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끈 TCL 전시장.사진=허진 기자

입구부터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끈 TCL 전시장.사진=허진 기자

중국 기업은 질과 양 모두에서 국내 기세를 올렸다. 올해 행사에서 중국 기업 TCL, 하이센스 등은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TCL은 참가자 뱃지와 목줄에 로고를 새기는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전시장 건물 외벽에도 이들의 대형 광고가 걸렸다.

중국 기업들의 화려하고 큰 전시관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훔쳤다. 대형 전시장을 마련한 TCL은 곳곳에 ‘Inspire Greatness(위대함을 일으켜라)’라는 문구를 내걸고 외벽에는 화려한 디스플레이 패널을 채워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들은 올해 초 열린 CES 2024 때와 마찬가지로 업계 최대를 자랑하는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전시관 한가운데를 배치해 시선을 끌었다. 하이센스, 창홍 등 중국 기업도 크기를 앞세운 대형 TV를 전시했다. 특히 창홍이 유럽 시장을 노리기 위해 만든 브랜드 CHiQ의 전시관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CHiQ 관계자는 “삼성, LG와 같은 한국 기업들의 기술 리더십은 여전하지만 중국 기업들도 빠르게 추격 중이라”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도 중국 기업 부스를 돌아본 직후 “(중국 기업이) 기술적으로 정말 많이 좋아졌고 특히 제품의 만듦새나 디자인, 마감 등 전체적인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며 “경계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이 중국에 밀리는 로봇청소기 영역에서는 중국의 독무대가 펼쳐졌다. 로봇청소기 업체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의 주인공은 로보락, 드리미, 에코백스 등 중국 대표 로봇청소기 기업들이었다. 드리미의 한 관계자는 “매년 로봇청소기 전시장에서 가장 목 좋은 자리는 로보락과 드리미가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고 전했다.

로보락은 이번 행사를 통해 두 대의 로봇청소기와 한 대의 무선청소기 신제품도 처음 공개했다. 이 중 로봇청소기의 신모델 ‘Qrevo-Curv’는 최대 40㎜ 높이의 장애물을 넘나들 수 있으며 먼지 제거에 중요한 흡입력은 1만 8500㎩(파스칼)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 달 전 최대 20㎜의 장애물 극복 기능과 10000㎩의 흡입력을 가진 스펙으로 출시된 LG전자 플래그십 로봇청소기를 약 두 배 가까운 성능 격차로 따돌린 것이다. 이번 IFA는 가전 시장에서 중국의 돌진이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을 확인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