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똥이네요.”
2024년 8월27일 여의도 샛강에서 한겨레21 취재진을 안내하던 사회적 협동조합 한강(한강 조합)의 이재학 팀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찾던 수달 똥이었다. 앞서 샛강의 서쪽 지점에서도 수달 똥을 발견했지만, 오래전에 싼 것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샛강의 가장 동쪽 지점에선 아직 완전히 말라붙지 않은 수달 똥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며칠 전에 다녀간 것으로 보였다.
취재진은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한강 조합의 도움을 받아 서울교에서 여의교에 이르는 1.2㎞의 샛강 주변을 살펴봤다. 이날 돌아본 5개 지점은 샛강에서 수달의 출현이 많은 곳들이었다. 한강 조합은 2022년부터 많게는 7개 지점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수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또 활동가들이 주요 지점을 매일 찾아가 똥과 발자국 등 수달의 자취를 확인한다.
2024년 8월27일 오후 수달이 자주 나타나는 서울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바위에 수달 똥이 있다. 김명진 기자
우리가 찾던 ‘따끈따끈’ 수달 똥
통상 여름철엔 장마와 홍수로 인해 무인카메라도 설치하지 않고 수달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홍수 때는 샛강의 수위가 평소보다 6~7m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물이 빠져도 수달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날 동행한 한강 조합의 김명숙 활동가는 “7~8월엔 수위가 불안정해서 수달이 샛강을 많이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수달의 똥을 발견한 것은 매우 운이 좋은 것이었다.
한강 조합이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관리와 방문자센터 운영을 위임받은 것은 2019년이 고, 그다음 해인 2020년부터 수달이 나타났다. 한강 조합의 조사 결과를 보면 수달은 2022년 1월부터 2024년 2월까지 2년 동안 7군데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159회 찍혔고, 똥도 96회 발견됐다. 2022년 서울시와 한국수달보호협회의 ‘한강 수달 서식 현황 조사 및 적정 관리 방안’ 보고서에서도 샛강의 수달은 무인카메라에 9회, 흔적이 26회 확인됐다. 샛강은 도심 생태공원이어서 시민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도 이렇게 수달의 활동이 많았다.
염형철 한강 조합 대표는 샛강에 수달이 찾아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7년부터 샛강에서 준설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이 스스로 회복해 숲도 우거지고 동물들의 먹이도 풍부해졌다. 수달이 살아갈 수 있는 은신처와 먹이가 마련된 것이다. 한강 조합에선 목책을 만들고 동선을 바꿔 사람과 동물의 공간을 분리하려 했다. 이것도 수달에게 도움이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24년 8월27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이재학 팀장(왼쪽)과 김명숙 활동가가 서울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서 달수네(수달) 가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수달은 샛강에만 돌아온 것이 아니다. 팔당댐 하류부터 난지 생태공원까지 서울 한강의 거의 모든 구간에서 수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서울시가 한국수달보호협회에 맡겨 연구한 한강 수달 보고서를 보면, 서울 한강 구간엔 적어도 15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었다. 서울 한강에서 수집한 수달의 똥을 유전자 분석한 결과였다.
서울 한강 구간 가운데 난지 생태공원과 홍제천, 밤섬, 여의도 샛강, 중랑천, 탄천, 성내천, 광진교와 암사 생태공원, 강동대교, 산곡천, 팔당댐 하류 등 10곳에서 183개의 수달 흔적이 확인됐다. 또 난지 생태공원, 밤섬, 여의도 샛강, 중랑천, 탄천, 성내천, 광진교와 암사 생태공원, 강동대교, 팔당댐 하류 등 9곳에서 171회에 걸쳐 수달이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서울 한강에서 수달의 귀환은 거의 40년 만이다. 서울 한강의 수달은 1979년 동호대교에서 수달 한 마리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37년 만인 2016년 탄천 하류에서 헤엄치는 수달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찍혔다. 한성용 한국수달보호협회장은 “1974년 팔당댐이 완공된 뒤 서울 한강에서 수달에 대한 보고가 거의 사라졌다. 어쩌다 로드킬(동물 교통사고) 기사나 목격담이 한두 건 나왔을 뿐이다. 한강을 따라 도시고속도로가 생기고 콘크리트 호안이 덮여, 강가에서 식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생태공원과 같은 강변 습지가 조성된 것이 수달이 돌아오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24년 5월30일 충남 서산시 도당천의 한 보에서 발견된 암수 수달. 김신환 제공
수달 출현 경로는 전문가 의견 엇갈려
한강에 수달이 돌아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달은 하천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고, 흔히 하천 생태계를 대표하는 ‘깃대종’으로 손꼽힌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이다. 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며,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의 ‘붉은(경고) 목록’에선, 한국에 사는 ‘유라시아 수달’을 ‘위기 근접’(Near Threatened)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서울 같은 1천만 대도시에 수달이 산다는 것은 기적이다. 다른 나라 도시들에서도 수달 복원 노력을 하지만, 서울 한강에선 별 노력 없이 수달이 돌아왔다. 아마도 한국의 기본적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엔 산이 많고 계곡엔 깨끗한 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한성용 협회장도 “대도시 서울에 수달 같은 물 생태계의 핵심 동물이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수달이 서울 한강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한강은 생태계 측면에선 최근 올림픽을 치른 프랑스 파리의 센강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평가했다.
수달의 귀환은 우리 하천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하천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한성용 협회장은 “수달의 먹이가 주로 큰 물고기여서 수달의 귀환은 작은 물고기를 보호하는 효과를 낸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서울 한강에서 사라졌던 수달은 어디서 홀연히 나타난 것일까?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한성용 협회장은 팔당 상류 쪽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서울 한강에서 수달이 사라진 것은 팔당댐 건설에 따라 이동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수변 환경이 좋고 수달의 출현 빈도가 높은 곳도 팔당댐과 가까운 상류 쪽이다. 이쪽에 습지나 바위 등 은신할 곳이 많다.” 염형철 대표도 “팔당댐을 넘어서 하류로 내려온 것 같은데, 놀라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팔당댐 상류에서 오긴 어렵고, 탄천이나 중랑천 상류에서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상훈 소장은 하류 쪽에서 왔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팔당댐 상류에서 내려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댐으로 막혀 있고, 양쪽에 도로가 있어 넘어오기 쉽지 않다. 아마도 하류의 임진강이나 공릉천, 서해 섬들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21년 4월10일 시화호에서 물고기를 잡은 수달. 최종인 제공
전국에서 수달 관련 634건 보고… 3천마리 추정
서울시와 한국수달보호협회의 보고서를 보면, 현재 서울 한강 구간에 사는 15마리의 수달은 주변에서 각자 들어왔을 가능성보단 서울 한강에 이주한 최초의 부모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유전자 분석에서 함께 새끼를 낳은 수달 부부의 부모 중 한쪽이 서로 같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강의 수달들이 근친교배를 통해 번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성용 협회장은 “유전자가 다른 수달이 임진강 등 하류 쪽에서 올라온다면 자연스럽게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 수달의 건강과 다양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현재 동물원에서 보호하는 수달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상훈 소장은 “근친교배는 한 지역에서 생물이 개체수를 늘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양성이 커진다. 동시에 주변의 하천과 바다에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수달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수달은 서울 한강뿐 아니라 전국의 하천에서 보고되고 있다. 한국수달네트워크에서 2023년 11월27~12월3일 전국 하천과 산, 바다를 낀 50여 곳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모두 634건의 수달 관련 보고가 있었다. 이 가운데 한강이 144건으로 가장 많았고 남강이 139건, 금강 136건으로 세 강에서 가장 많은 수달이 보고됐다. 이 밖에 낙동강 63건, 서남해 쪽 독립 하천 41건, 거제도 38건, 동해 쪽 하천 32건, 새만금 21건, 영산강 7건, 섬진강 2건 등이었다. 이 조사를 2009~2010년, 2015년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와 비교하면 서울과 경기 지역의 수달 보고가 크게 늘어났다.
한상훈 소장은 2009~2010년 조사 때 국립생물자원관의 동물과장으로 참여했다. 한 소장은 “당시 조사에서 전국의 65% 정도 지역에 수달이 사는 것으로 나왔다. 개체수(마릿수)는 내륙에 1500마리, 연안 쪽에 1500마리 등 3천 마리 정도로 추정됐다. 현재도 개체수는 비슷할 것으로 본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달 서식 밀도”라고 말했다.
수달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자 이를 잘 마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전국의 33개 환경단체는 2023년 5월 ‘한국수달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들은 그 뒤 수달 학교, 수달 포럼, 수달 워크숍, 수달 조사, 수달 그리기 대회, 수달 대회를 잇따라 열었다. 2024년 8월12~13일 충북 진천에서 열린 전국수달대회엔 시민과 활동가, 전문가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수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2007년 4월14일 경남 진주시 진양호의 한 바위 틈에서 쉬고 있는 수달. 김철한 제공
수달과 공존하려면 “하천 개발·이용 줄여야”
우리 곁에 돌아온 수달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강의 흐름을 가로막는 구조물을 제거하거나 개선해야 한다. 한성용 협회장은 “저수호안(낮은물 제방)이나 수중보 등 수상 구조물을 수달이 쉽게 오갈 수 있게 낮추고 완만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훈 소장은 “하천에 대한 지나친 개발과 이용을 줄여야 한다. 하천을 사람이 독점하려 하지 말고 수달에게 조금 내줘야 한다. 사람이 가지 않는 공간이나 시간을 주면 수달은 자연히 찾아온다”고 말했다.
수달의 귀환을 시민에게 널리 알리고 수달 보호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성용 협회장은 “수달 보존 사업을 하려면 환경단체와 지방정부,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시간을 갖고 수달을 지켜보면서 수달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열쇳말: 건강한 물 환경의 지표종, 수달
수달은 깨끗하고 먹이가 충분한 강, 호수, 바다, 늪에 사는 포유류로 건강한 물 환경의 지표종이다. 전세계에 13개 종이 있으며, 한국엔 유라시아 수달 1종만 산다. 길이는 꼬리를 포함해 1~1.4m, 무게는 4~12㎏이다. 먹이의 80%가량은 물고기이며 벌레나 파충류, 양서류, 갑각류, 새도 먹는다. 활동 시간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이며, 낮엔 은신처에서 자거나 쉰다. 은신처는 물가의 바위틈이나 갈대숲, 나무뿌리 아래, 배수구 등이다. 하천을 따라 세력권을 형성하며 암컷은 5~7㎞, 수컷은 10~15㎞ 정도다. 고려와 조선 때는 수달 가죽이 옷 재료로 사용됐으며 중국에 보내는 선물에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