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울 여의도가 펼쳐진 두 장의 지도가 있다. 모두 공간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한 3차원(3D) 지도다. 지도①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구축한 3D지도의 화면이다. 마포대교 아래엔 생뚱맞게 잠수교 같은 다리가 놓여 있다. 한강 둔치도 높낮이의 입체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업체가 제작한 지도②와 비교하면 해상도는 물론 정확도, 정밀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한국판 구글어스’를 표방하며 LX를 통해 구축한 디지털트윈 기반의 3D공간정보 시스템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밀도가 떨어져 홍수 예측,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등 물리적 정보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간정보를 가장 폭넓게 활용하는 전국의 지자체에 LX의 3D지도가 독점적으로 공급되고 있어 국내 스마트도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도로 형태가 롤러코스터(?)
국토부는 LX를 통해 2011년부터 3D공간정보 시스템 개발에 나서 대민서비스용 ‘브이월드’와 이를 행정서비스용으로 만든 ‘LX플랫폼’을 공개했다. 그동안 들어간 비용은 약 2000억원 정도다. 2021년부터는 3차례의 ‘디지털 트윈국토 시범사업’을 통해 24개 지자체에 LX플랫폼을 구축했다. 교통관리, 재난체계구축 등 각 지자체의 현안에 필요한 공간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국비로 사업비의 50%를 지원하는 데다, LX플랫폼을 1년간 무상 지원하는 혜택을 제공해 민간업체는 지자체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에 구축된 LX플랫폼의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울주군 도심의 한 건물은 차도 위에 들어서 있다. 대전시청 인근의 한 건물은 2차선 도로 중 1차선까지 침범한 형태로 구현돼 있다. 울산 선암저수지 주변의 도로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공간 디지털트윈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트윈은 말 그대로 현실 공간을 쌍둥이처럼 구현하는 게 기술력의 핵심인데 LX플랫폼으로는 인공지능이 공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자율주행이나 드론, UAM 등의 시뮬레이션을 구현하기 어렵다”며 “강수량에 따른 홍수 예방 프로그램도 하천의 높낮이와 경계가 정확하지 않아 신뢰도 높은 산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LX플랫폼이나 브이월드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주된 요인으로 3D지도의 제작 방식의 한계가 지목된다. 인공위성으로 찍은 평면의 바닥 정보에 8000m 이상의 고도에서 경비행기를 통해 수집한 도로, 건물 등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민간업체의 3D지도는 이와 달리 드론을 활용한 근접 정밀 스캐닝으로 실제와 거의 비슷한 구현이 가능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LX플랫폼은 평평한 지표면을 인위적으로 3D 방식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어서, 실물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 입체감이 구현돼 축적의 오차범위가 커지게 된다”며 “정부가 계속 고도화하고 있지만 시스템을 원점에서 개편하지 않는 한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밀도의 오차범위가 크다 보니 LX플랫폼이 구축된 지자체의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버스노선 개편에 활용했을 뿐 여타 시 행정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민간 프로그램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초기 안정화가 되지 않아 부서별로 폭넓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 추가로 리모델렝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청. 카이(KAI) 등 정부 부처나 공기업도 LX플랫폼 대신 민간업체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서울시도 LX플랫폼 도입을 외면하고 민간업체와 협의해 자체 개발에 나선 상태다.
국내 3D 공간정보 분야 민간업체의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 수준에 올라서 있다는 평가다. 3D지도 축적정밀도의 오차범위는 2㎝~10㎝ 수준에 불과하다. 15㎝ 정도로 추산되는 구글어스보다 정밀한 수준이다. 네이버를 비롯해 코스닥시장 상장사 이에이트, 테크트리 이노베이션, 시스테크 등이 국내 선두 업체로 꼽힌다.
LX플랫폼이나 브이월드는 오차범위를 측정하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LX관계자는 “민간업체 프로그램보다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건 인정하지만, 수요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무작정 예산을 투입해 몇 ㎝ 단위로 시스템을 개발하는 건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디지털트윈 시장은 2023년 101억 달러에서 2028년 1101억 달러로 약 11배가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부다비, 인도, 이스라엘 등의 기업과 제휴해 현지 진출을 추진 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가장 큰 시장인 지자체는 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성장에 한계를 겪고 있다”며 “본사를 해외로 이전해달라는 요청까지 받고 있어 이러다간 국내 도시의 스마트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교수 등 다수의 전문가가 정부 용역과제에 얽혀 있어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여서 개선이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5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