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의 풀을 매고, 감밭의 풀을 매고, 논두렁의 풀을 매고, 집 앞 밭도 풀을 맨다. 끝없는 풀매기인 것 같았는데, 처서가 지나고 밤엔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풀도 풀이 죽었다. 풀을 베다보면 풀이 튀는지 곤충이 튀는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예초기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무언가 바삐 움직인다면 그것은 곤충이고, 예초기가 돌아가면서 무언가 튄다면 그것은 풀이다. 곤충들은 제각기 살고자 부단히 도망간다.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풀 중에 성가신 풀을 하나 꼽자면 바랭이다. 바랭이는 볏과의 한 종류로 4~5월부터 발아하는데, 7~8월이 되면 그 기세가 대단하다. 사람의 무릎까지 자란다. 바랭이는 자라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는데, 그 마디에서 또 새로운 개체가 탄생한다. 자기복제를 무한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는지 바랭이는 끝내 상추씨 같은 자그마한 씨앗도 뿌린다. 이런 바랭이와의 싸움은 4월부터 8월까지 적어도 3번 이상은 해야 한다. 한 번은 호미질로 얕게, 두 번째는 낫으로, 세 번째도 낫으로 한다. 아무리 깔끔하게 해도 내년에 바랭이를 안 볼 수가 없다. 하나만 살아남아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벤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씨앗을 뿌리기 때문이다. 풀의 대명사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바랭이는 성가신 풀이면서도 유용한 작물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는 밭에 한 해만 지나면 멀칭(작물이 자라는 땅을 덮어주는 것)이 두둑이 쌓이는데, 그건 다 바랭이 덕분이다. 다른 풀로 했으면 어림도 없을 멀칭을 두껍게 해줄 수 있다. 밭에 그늘을 만들어주니 수분이 잘 날아가지 않는다. 바랭이가 썩으면서 곰팡이와 콩벌레 등이 몰려든다. 풋거름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주니 이처럼 좋은 풀도 없다.

바랭이는 닭에게도 최고의 간식이다. 한창 풀이 넘쳐날 때 한 아름 가져다주면 ‘꼬꼬꼬꼬’ 하면서 몰려든다. 새끼들은 다 빼앗길까 싶어 바랭이풀 하나 잡고 멀리 도망간다. 닭들은 바랭이를 뜯어보려 하지만 처음엔 뜯기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본 끝에 풀을 밟고 그제야 바랭이를 마음껏 뜯어 먹는다.

옛날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풀을 못 베는 기간을 두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밭에 줄 거름과 가축에게 줄 소중한 먹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약간 단맛이 돌기도 하는 바랭이는 소들에게 좋은 먹이가 됐다. 어르신들은 소들을 데리고 나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논두렁이나 마을 길가에 자란 풀을 뜯어 먹게 했다. 살아 있는 예초기였던 셈이다. 바랭이를 산더미처럼 베어 한쪽에 쌓아두고, 거기에 삭힌 오줌을 뿌리면 풀이 삭아 좋은 거름이 되기도 했다.

올해 바랭이와의 싸움은 한풀 꺾였다. 지겹도록 뜯고 벴다. 덕분에 멀칭이 두둑이 쌓였고 닭들에겐 좋은 먹이가 됐다. 바랭이와 씨름하면서 종합격투기 한판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바랭이 때문은 아니지만 바랭이를 뜯으면서 온갖 벌레에 이곳저곳을 뜯기고 나면, 온몸이 근질거려 고생한다. 지인은 예초기를 돌리다 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부었다. 바랭이가 가격한 어퍼컷에 제대로 맞은 셈이다. 이제 가을, 겨울, 봄에 몸을 회복하면서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내년에도 바랭이와 한판 붙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