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특파원 = 일본 야마카와출판은 지난 22일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4년 전 검정 교과서에 기술했던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이 출판사는 2020년 검정을 통과한 기존 역사 교과서에는 “전장에 만들어진 ‘위안시설’에는 조선·중국·필리핀 등으로부터 여성이 모였다”라는 문장 뒤에 ‘이른바 종군위안부’라는 문구를 괄호 안에 넣어 병기했다.
하지만 이번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에는 “일본·조선·중국·필리핀 등으로부터 여성이 모였다”며 ‘일본’을 추가하고 종군위안부는 빼버렸다.
아무래도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가뜩이나 일제강점기 위안부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가 적은 상황에서 가해 역사를 흐리는 개악이 이뤄진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다”며 “단순히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채택한 것과 관계가 있다.
일본 정부는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간다’를 뜻하는 ‘종군’을 쓰면 강제로 연행됐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국회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 형태로 당시 이같이 결정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에도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던 ‘고노 담화’에 담긴 표현이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1993년 8월 4일 발표한 담화에서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를 조사해 발표한다”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위안부 이송에 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했다.
이어 위안부 모집·이송·관리가 “본인들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며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큰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분명히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3년 전 각의에서는 강제성을 부정하는 결정을 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교과서 집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중학교 검정 교과서에서 일본의 가해 역사 서술이 희석된 분야는 종군위안부뿐만 아니라 징용·한국 병합·임진왜란 등 다양했고,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거나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책의 비율은 늘었다.
일제강점기 동원돼 훈련하는 조선 젊은이 사진을 조선 신궁 사진으로 변경한 역사 교과서도 있었다.
‘조선인을 징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청년들 사진을 일제가 조선을 문화적으로 동화시키려 했다는 점을 전하는 신사 사진으로 대체하면 가해 역사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내용 변경도 결국은 일본 정부가 2021년 국민징용령에 의해 징용된 한반도 노동자에 대해 ‘강제연행’ 대신 ‘징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채택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내놓으면서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됐고 양국 교류도 늘었지만, 새 교과서에 반영된 역사 인식은 오히려 후퇴했다.
비단 교과서 기술뿐만 아니라 최근 역사 문제와 관련해 불거진 여러 현안에서 일본 측은 크게 진전된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일부 일본 언론과 시민단체가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모르쇠로 버티며 책임을 회피했다.
또 군마현 당국은 지난 1월 사법부 판단을 명분 삼아 공원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시민단체 반대에도 철거했다.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이었던 사도 광산이 올여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양국 간 역사 갈등은 재점화할 수 있다.
일본이 유산 대상 시기를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의도적으로 강제노역 역사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 이후 한국을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로 평가하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직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내년 일본 검정 교과서가 공개됐을 때는 한국 학계가 긍정적으로 볼만한 대목이 많이 눈에 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