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반도체법'(Chips Act)의 미래에 관심이 쏠린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도 현지 투자를 통한 보조금을 받기로 한 만큼 트럼프 행정부 이후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관련 기업들 우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6조9천억원)의 보조금과 연구개발 지원금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법을 통해 민간 기업의 4천억달러(약 583조8천억원) 이상 투자 계획을 유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지원 계약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전부터 반도체법에 대해 “너무 나쁘다”며 보조금 대신 관세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18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차기 상무장관 지명자가 반도체법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견제’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미국 반도체 제조 및 기술을 강화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반도체법의 전면적인 폐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의 개정 요구와 보조금 재협상 가능성 등 여러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반도체법의 환경 요건 및 노동 친화적 규제 등 ‘사회적 조항’들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보조금 계약에 대한 재협상 가능성도 열어줬다. 비벡 라마스와미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 지명자는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막판에 확정된 보조금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더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큰 영향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체결된 계약의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보조금 지급이 실제로 차기 행정부에서 이뤄지는 만큼 법 해석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미국 상무부는 기업들이 계약 조건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보조금 환수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서류 제출 기한 미준수와 같은 사소한 사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47억4천500만달러(약 6조9천억원)의 보조금을 확정받았지만, 이는 당초 계약보다 약 26% 줄어든 금액이다. 삼성전자가 텍사스 투자 규모를 축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 현지에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2026년 이후 가동이 될 계획이어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변화에 따라 보조금 지급이 바뀔 수도 있다.
또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할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자칫 ‘반도체 수출’에서도 역효과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반도체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경우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반도체법을 이끌어온 상무부 반도체프로그램사무소(CPO)의 마이크 슈미트 소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보조금 계약 체결 이후에도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바뀔 수 있다”며 정책의 유연성을 인정했다. 그는 “반도체법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변곡점을 만들었다”고 자평하며, 감세보다 보조금이 투자 유치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국가안보와 관련된 구형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비공개 합의를 했다고 덧붙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400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