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당 총재가 국회에서 제명되며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항쟁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정부는 이들을 탱크로 밀어버릴 궁리를 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18년 동안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군림하던 대통령은 이 총성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한 점은 대통령을 죽임으로써 엄혹한 유신 독재를 종식시킨 이들이 정권의 ‘내부자’인 중앙정보부장과 그 수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모범적 군인 박태주의 시대적 소명
2024년 8월14일 개봉한 영화 ‘행복의 나라’(추창민 감독)는 체제의 일부였으나 이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들, 그중에서도 유일한 현역 군인이었던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영화 속 이름은 박태주, 이선균 분)의 재판을 다룬다. 10·26에서 12·12로 이어지는 급박한 정국을 다룬다는 점에서 팬데믹 이후 첫 1천만 흥행을 기록한 ‘서울의 봄’(2023년, 김성수 감독)의 기시감을 일으킨다. 영화로서는 비교당하는 ‘역사적’ 부담을,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 덜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돈밖에 모르던 속물 변호사의 각성이라는 점에서 ‘변호인’(2013년)이 연상되지만. 감독이 영화의 주제로 구현하고자 한 것은 가상 인물 정인후겠지만, 이 글에서는 박흥주와 실제의 역사를 떠올리며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는 모범적 군인 박태주가 갖는 시대적 소명에 대한 인식이다. “상관의 명령이었다.” 박태주가 대통령 살해에 가담한 이유는 영화에서 거듭 되풀이된다. 그러나 군인이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죽이는 일에, 단지 상관의 명령이기 때문에 가담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설령 재판에서는 이길 수 없을지언정 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명령’을 뛰어넘는 논리가 필요하다. 거기에 영화는 ‘민중을 위해서’라는 답변을 준비해놓았다. 박태주는 정인후에게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까. 부산과 마산에서 격화되는 시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실제 역사와 불화한다.
실제 인물 박흥주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급박’하다는 인식만 있었을 뿐, 전체 맥락을 보지 못했다. 실제 최후 진술(‘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본인으로서는 예기치 않았던 일이고, 행동에 참여는 했지만, 큰 계획도 모르고 실시했던, 생각해보면 복잡한 생각을 가져오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실패한 내란 10·26,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의거?
민주주의의 운명에 관한 질문이다. 실제 역사에서 김재규가 여러 차례 항변했듯 대통령의 운명과 민주주의의 회복은 “숙명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모든 투쟁은 내란의 성격을 지닌다. 민주주의 회복이란 곧 기존 독재 체제를 뒤흔들고, 끝내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형법상의 ‘내란죄’가 아닌, 체제 전복으로서 내란과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오늘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 수많은 사건이 독재 시절에는 내란이나 폭동, 사변으로 불렸다. ‘서울의 봄’ 속 유명한 대사 “실패하면 반란, 성공하면 혁명”을 비틀면 “실패하면 내란, 성공하면 민주주의”인 것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26을 배경으로, 실제 인물 박흥주(이선균)과 가상인물(조정석)이 등장한다. 영화사 뉴 제공
이 점에서 10·26은 내란일 수밖에 없었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신의 심장’인 대통령만 사라졌을 뿐, 그를 지탱하던 군부와 관료집단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이들은 유신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선뜻 민주화로 이행할 생각도 없었다.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끽해야 ‘질서 있는 변화’ 정도였다. 유신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10·26 이후 다름 아닌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취임하고, 시종일관 자신이 “국가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존재임을 과시했단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당시에 내란으로 매도됐을지언정 오늘날에는 충분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의거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10·26은 그조차 쉽지 않다. 10·26의 주모자들이 유신체제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박흥주를 비롯한 10·26 주모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민문기가 남긴 소수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박 대통령 사망 후 새 헌법을 만들자는 것이 전 국민의 합의로서 이는 시국을 지배하는 구속력이 있으므로, 10·26 사건 범행 시의 기반이 재판 시의 기반과 달라졌다는 정치상황이 초법규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유가 된다. 따라서 피고인들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문기의 주장이 소수의견으로 남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유신체제의 폐지는 국민 사이에서조차 명확한 합의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선택한 ‘착한 사람’
‘행복의 나라’는 유신의 손발이었던, 그리고 호락호락 민주화를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던 군과 관료를 지워버린다. 이 영화에서 명백한 ‘악인’은 사망한 전 대통령과 전상두(전두환, 유재명 분) 둘뿐이다. 그 결과 유신을 떠받친 군의 일원이었으나 그 심장을 제거하는 데 일조했던, 박태주란 인물의 딜레마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가 선택한 논리는 ‘명령’도 ‘민주화’도 아닌, 박태주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인후는 박태주에게서 평생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과 여공들을 도와주다 감옥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를 본다. 그는 12·12 사태 이후 실권자로 떠오른 전상두에게 개처럼 골프공을 주워주는 등 온갖 수모를 감수한다. 그가 끝내 절규하듯 내뱉는 대사는 “착한 사람은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착한 사람이기만 하면, 영화 속 변호인단의 말처럼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상관없어지는가. 실제 역사에서 대통령 장례식 다음날에 전국마라톤선수권 대회가 개최되는 등, 10·26 직후 시민들은 예상과 달리 평온을 유지했다. 이처럼 커다란 혼란에도 질서를 지키며 인내하던 대다수의 착한 사람들은, 광주를 제외하면 신군부의 독재를 사실상 용인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비로소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적지 않은 착한 사람들은 또다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표어로 내건 신군부의 일원을 ‘민주적으로’ 대통령에 선출했다. 착한 사람은 보통 사람에서 얼마나 더 나아가는 것인가. 영화가 표어로 내건 ‘반드시 살려야 할 사람이 있다’라는 건 박태주라기보다는 몰아가기 수사와 보도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배우 이선균을 더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