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구·강태화 특파원 – 미국 대선 현장을 가다“땡큐 조! 땡큐 조!”
미국 대선을 80여 일 앞둔 지난 15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라르고의 프린스 조지 커뮤니티 칼리지에 마련된 민주당 대선 유세장.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소개하자 청중들은 “땡큐 조(조 바이든 고마워요)”를 연신 큰 소리로 외쳤다. 대통령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으로 민주당 대선 캠프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번 선거를 해볼 만한 싸움으로 만들어준 데 대해 지지자들이 보내는 성원의 함성이었다. 이날 바이든은 지난달 21일 ‘재선 도전 포기’를 선언한 이후 해리스를 돕는 첫 지원 유세에 나섰다.
한껏 달아오른 유세장 분위기는 최근 해리스의 지지율 급상승을 반영하는 듯했다. 해리스는 정치전문 매체 더힐이 지난 15일 내놓은 전국 지지율에서 48.2%를 기록해 46.8%인 트럼프를 1.4%포인트 앞섰다. 사퇴 전까지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줄곧 밀렸던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미 대선의 향방을 사실상 결정하는 6개 경합주 가운데 미시간주 등 일부에서는 해리스가 트럼프의 지지율을 추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역시 바이든 사퇴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트럼프 총기 피격과 민주당으로선 최악의 악재였던 첫 TV토론 이후 굳어지는 듯했던 트럼프 대세론이 무너지고 어느 새 대선 판세는 초접전으로 바뀌었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고 유세에 나선 바이든과 해리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날 바이든은 해리스를 두고 “정말 멋진 대통령(one hell of a President)이 될 것”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해리스는 “의료 지원 확대를 포함해 조 바이든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낸 대통령은 없다”며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디딘다”고 역설했다.
고령으로 발목이 잡혔던 바이든은 자신의 나이를 소재로 한 ‘자학 개그’까지 선보였다. 그는 “270년 동안 상원의원을 지냈다. 내가 마흔 살 정도로 보이는 것은 알지만 나는 좀 늙었다”며 일부러 실언을 했다. 그러면서 “29살에 처음 상원으로 선출됐을 때는 빌어먹게도 어렸는데 지금은 너무나 늙었다”며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트럼프를 향해선 날을 세웠다. 바이든은 트럼프 전 대통령 이름을 두고 “도널드 덤프(dump·쓰레기 더미), 도널드 뭐가 됐든 간에(Donald whatever)”라며 비꼬았다.
이날 유세장에는 해리스에 대한 청년층과 유색인종 등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관심을 반영하는 듯 20대와 흑인 상당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20대 흑인 남성 데이비드 톰슨은 “해리스는 바이든보다 훨씬 젊어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다”며 “대선에서 누가 이길지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해리스의 정책이 조직적이고 희망적이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땡큐 조” “땡큐 조”…청중들, 해리스 지원 바이든 향해 함성
조 바이든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유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의 손을 들어 보이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민주당은 해리스의 상승세에 힘입어 오는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세 결집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이를 위해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연설한다. 이들 외에도 민주당의 핵심 인사 전원이 총출동해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 앞서 당 차원의 전면적 지지 의사를 피력할 예정이다.
이번 전당대회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과정에서 분열했던 민주당이 해리스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는 의미의 출정식이 될 거란 얘기다. 이는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출신 대통령 또는 역대 대선 후보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사실상 ‘나홀로 대관식’을 진행했던 것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통상 전당대회에서는 대의원 투표를 통해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5일 이미 해리스를 후보로 확정했기 때문에 별도의 대의원 투표는 실시되지 않는다. NBC 뉴스는 지난 14일 해리스 캠프 인사들을 인용해 “민주당 진용(team blue)이 ‘(당내)모든 집단이 여기에 모였다’는 의미의 라인업을 강조해 형성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빌 클린턴 전 대통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이 해리스의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로 한 사실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래픽=남미가 [email protected]먼저 테이프를 끊는 이는 현직 대통령 바이든이다. 그는 전당대회 첫날인 19일 전당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바이든에 이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20일 연단에 선다. 특히 오바마는 이번 선거에서 단순히 전직 대통령의 위상을 뛰어넘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해리스 캠프의 핵심이 ‘오바마의 사람들’로 개편됐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바이든 캠프를 인수하면서 총괄을 맡았던 오마이 딜론을 그대로 기용했고, 선거 본부도 델라웨어 윌밍턴에 그대로 두면서 당내 동요를 차단했다. 동시에 2008년 오바마 캠프의 매니저였던 데이비드 플러프, 조직 담당 미치 스튜어트를 비롯해 백악관 공보국장을 맡았던 젠 팔미에리, 선거 광고 담당 짐 마르골리스 등을 불러들여 핵심 업무를 맡겼다.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정·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이다. 먼저 21일엔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나서는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월즈의 연설에 앞서 연단에 올라 사실상 월즈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22일엔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로 전당대회가 마무리된다.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해리스의 대선 출정식인 동시에 11월 5일 대선까지 지금의 기세를 끌고 나갈 수 있을지 평가하는 시험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해리스는 지금까지 전국 주요 경합지를 돌면서 매번 1만명 이상의 지지자를 집결시키는 등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상승세가 후보 교체에 따른 일시적 ‘허니문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해리스는 아직 심층 인터뷰에 응하거나 자신만의 구체적 정책 구상을 제시한 적이 없다. 바이든 후보 사퇴의 결정타가 됐던 트럼프와의 TV 토론이 다음 달 10일로 예정돼 있는데, 해리스의 ‘실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는 기회는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도 최근 사설을 통해 “해리스는 트럼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정책과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해리스의 ‘대관식’을 앞둔 민주당 앞엔 악재도 있다. 전국 200개 이상의 단체가 모인 ‘디엔시 행진(March on the DNC 2024)’이 전당대회 첫날과 마지막 날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이스라엘 지원 중단 요구’ 시위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리스의 핵심 지지층인 젊은 층 표심에 직결돼 있다. 만약 이번 시위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해리스에게는 등판 후 첫 시련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 그는 인플레이션을 공격 소재 삼아 바이든·해리스 정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트럼프는 에너지(전기) 요금과 식료품 물가상승률 수치를 하나하나 제시하며 “해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끔찍한 인플레이션과 대규모 범죄, 아메리칸 드림 말살뿐”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대공황 때와 같은 경제적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어진 취재진 질의응답에서 해리스 인신공격에 대한 당내 우려와 관련해 “그녀(해리스)가 저와 다른 사람을 겨냥해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하는 것에 화가 난다”며 “나는 인신공격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자신과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을 향해 ‘괴상하다(weird)’고 하는 것도 거론하며 “그녀도 나를 개인적으로 공격한다”며 “괴상한 것은 그들(해리스와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이라고 맞받았다.
CBS 방송 등은 해리스와 트럼프는 9월 10일 TV 토론을 한 뒤 10월 중 다시 TV 토론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부통령 후보 간 TV 토론은 10월 1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