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설치·유지·보수 업무 담당 자회사 신설과 관련 직원 전출·희망퇴직을 진행 중인 KT가 ‘전출 압박’ 논란에 휩싸였다. 당초 KT 노사는 자회사 전출 여부를 직원 자율에 맡기기로 했지만 사측이 설명회에서 자회사 전출을 압박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김영섭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직원들은 “자괴감이 느껴진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통신망 업무가 자회사로 이관되면 업무 차질은 물론 아현지사 화재 사고 같은 통신망 관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KT는 “기술 전문 회사를 설립해 관리를 더 잘하겠다는 취지”라면서 자회사를 설립해도 통신망 관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 노사는 지난달 17일 통신망 설치·유지·보수 업무 인력을 자회사로 전출하는 것에 합의했다. 당초 노사는 자회사 전출 여부를 자율적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최근 KT 사측 관계자들이 자회사 전출 대상자들에게 ‘자회사로 가지 않으면 모멸감과 자괴감이 들 것’, ‘고문관·꼴통이 되는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에 김영섭 KT 대표이사는 지난 4일 사내방송을 통해 최근 불거진 ‘자회사 전출 압박’ 논란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영섭 대표는 “언론에 회자된 불미스러운 사례에 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자회사 전출은) 과거의 구조조정 방식이 아니고 합리적인 조정이며 신설 기술 전문기업에서 계속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 안정성을 지키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장 인력의 70% 이상인 9200여 명이 50대 이상”이라면서 “선로 관리 등 분야에서 시장 임금 체계와 KT 체계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그간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KT 직원 A씨(통신망 유지·보수 업무 담당)는 미디어오늘에 “김 대표 사과는 너무 형식적”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통신망 관리 업무를 자회사로 넘긴다면 아현지사 화재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A씨는 “그동안 크고 작은 구조조정으로 많은 직원들이 떠났다. 인터넷 발전으로 통신망 유지보수 업무는 늘어나지만, 인력이 줄어들면서 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라며 “통신품질 저하는 물론 언젠가 또 아현사태 같은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A씨는 “김영섭 대표는 통신망 유지·보수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보는 것 같은데,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현장에서 자괴감이 많이 든다”고 했다.
KT 직원 B씨(통신망 유지·보수 업무)는 미디어오늘에 통신망 업무가 자회사로 넘어갈 경우 업무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언론 보도에 나왔으니 사과를 한 것으로 보이고,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며 “역량 있는 직원들은 희망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회사 전출을 결정한 직원들의 경우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다. KT가 통신망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했을 때 업무 연속성이나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B씨는 “현재도 전화선과 인터넷을 연결하는 동축 케이블의 예산이 부족해 수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본사에서 직접 운영해도 이 정도인데, 자회사로 업무가 넘어간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KT노동조합은 5일 소식지를 내고 “사측에선 현 상황이 초래된 일부 임원의 실언에 대한 해명 뿐 아니라 회사의 성장 지속성, 신설 법인의 비전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조합원의 의구심은 여전하다”며 사측에 현장 안정화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김인관 KT노동조합 위원장은 소식지에서 “일부 우려대로 혹시라도 모를 보복성 인사가 발생된다면 노사파행을 각오하고서도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KT새노조는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김영섭식 구조조정이 완전히 실패임을 자인한 꼴”이라고 지적하면서 “결과적으로 현재 KT 통신망 안정성에 대한 리스크가 굉장히 높아진 것이다. 또 전출과 희망퇴직 거부 인원에 대해서도 아무런 계획이 없음을 인정했다”고 했다. KT새노조는 “(이번 사내방송에서) 직원들을 괴롭히고 전출을 강요했던 일선 관리자와 임원에 대한 징계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며 “고위급 임원부터 일선 관리자까지 전출 강요 사례를 전수조사해서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이번 개편은 기술 전문 회사를 설립해 관리를 더 잘하겠다는 취지”라며 “연속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자회사라는 조직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자회사를 만든다고 무조건 비용을 줄이거나 하는 게 아니다. 통신망이 잘 운영돼야 KT도 유지되는 것이기에 투자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KT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1723명이 자회사 전출을 신청했으며 희망퇴직 신청인원은 2800여 명이라고 밝혔다. 당초 KT는 인력 재배치 계획 초안에서 통신망 설치·유지·보수 업무 담당 직원 4800명 중 3780명을 자회사로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KT는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 전문성 전수, 협력업체와의 시너지 강화 등을 추진해 네트워크 운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침”이라며 “네트워크 인프라 전반의 안정성과 대고객 서비스 품질 유지 및 향상을 위해 현장 상황에 최적화된 유연하고 신속한 업무 수행 환경과 의사결정 체계를 빠르게 완성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