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경쟁국에 비해 자본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이 작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나라들과 국제 연대를 하고 인공지능(AI) 시대에 천하를 셋으로 쪼개야 한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3일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30회 한국산업기술협회 기술경영인 하계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산기협 하계포럼은 국내 최대 규모의 기술경영인 행사로, 6일까지 국내외 혁신환경 변화와 새로운 기술 동향 등을 공유하는 자리다.
이 총장은 다가오는 인공일반지능(AGI) 시대에 오픈AI, 구글 등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독자적인 AGI를 보유하려면 자본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는 기술력에서는 ‘링’ 위에 올라갈 정도가 되지만 GPU, 메모리 등을 구매할 자본이 부족하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함께 국제 공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AI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AI 천하를 셋으로 쪼개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게 될 것이다. 독자적으로 AI 시스템을 보유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뿐”이라며 “전 세계 디지털 판도를 판별하는 간단한 방법은 자체 포털을 보유했느냐 여부인데 우리는 네이버라는 독자적 포털이 있다. 세계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외에 포털을 가진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 공조를 통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과 협력하는 것은 미래 우리 자녀세대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이냐와 연결된다”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라끼리 연대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 AI 산업을 육성하려면 30년 전 자동차, 철강, 조선 등을 키웠을 때의 각오로 AI에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우리나라의 AI 방향성을 범용인 AGI와 특화모델 중 하나로 정하고, 1~2개 선진 기업을 선정해서 집중 지원해야 한다”면서 “30년전 자동차, 조선회사를 만들 듯 키워야 할 때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산기협은 이번 행사의 특별주제를 AI로 정했다.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공경철 엔젤로보틱스 대표, 이교구 수퍼톤 대표, 강이연 KAIST 교수 등이 AI와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조혁신, 문화·예술 전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AI 활용 사례 등에 대해 발표한다.
구자균 산기협 회장은 “우리나라는 길었던 팬데믹과 저성장 터널 속에서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역대 2위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연구소 보유기업의 68%가 신규 연구개발(R&D)을 추진하는 등 기술혁신을 통한 회복 의지를 보여왔다”면서 “그럼에도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해 세계 경제는 흔들리고 있고 기후변화, 기술패권 경쟁 등에 따른 각종 규제는 또 다른 무역 장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기후테크 등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미래 먹거리가 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세계 AI 경쟁력 6위, 글로벌 혁신 국가지수 10위에 달하는 기술력과 혁신역량을 바탕으로 또 한번 위기를 기회로 바꿔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