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에 걸맞지 않게 적은 세금을 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과 달리 회계 내역을 들여다보기 힘든 제도적 원인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이 같은 ‘조세 회피’ 때문에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조세당국의 실태 파악과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600만 국민이 이용하는 구글, 법인세는 네이버의 3% 수준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조세 회피의 선두에는 구글코리아가 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와 강형구 한양대 경영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을 3653억원으로 신고하고 155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46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유튜브와 구글의 광고 수익, 구글플레이의 인앱결제 수수료 등을 따진다면 지나치게 적은 매출이라는 평이 나온다.
전성민 교수 등이 구글의 경제효과보고서 등을 토대로 추산한 지난해 국내 매출은 최대 12조1350억원에 달한다. 실제 신고한 매출의 33배에 이른다. 이에 따르면 5180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냈어야 한다. 매출을 온전하게 신고한 NAVER(네이버)의 지난해 법인세는 4964억원이었다.
구글의 매출 축소는 90%에 달하는 매출 원가 처리 때문이다. 구글은 국내에서 번 수익을 대부분 싱가포르의 구글아시아퍼시픽에 매출원가 항목으로 내보낸다. 페이스북코리아 역시 메타에 보내는 매출원가를 높게 책정해 지난해 납부한 법인세는 51억원에 그쳤다. 애플코리아는 2022년 95.3%에 달하던 매출원가 비율을 지난해 88.8% 수준으로 낮췄다. 이에 따라 지난해 2006억원의 법인세를 냈는데, 이는 2022년(503억원)에 비해 4배 수준이다.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계 기업들의 경쟁력은 자연스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 기업의 약화로 이어진다. 10여년 전 80%를 넘나들던 네이버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최근 수년 간 60% 안팎에 머무른다. 구글의 점유율 역시 30%에 멈춰있지만, 최근 유튜브 등의 앱이 검색 기능을 강화하면서 보이지 않는 점유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투명한 회계를 바탕으로 매년 수천억원씩 세금을 내는 데 비해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해외 기업은 그저 자신들이 계산한 매출에 따라 터무니 없는 세금을 납부하는 데 그친다”며 “정치권에서 국내 IT기업들이 독과점을 한다며 플랫폼 때리기에 열중하는 사이 글로벌 빅테크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돈을 쓸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빅테크들은 국내 조사당국의 법인세 추징에 법적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구글코리아는 2020년 서울지방국세청이 5000억원을 추징하려 들자 행정소송을 제기해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코리아 역시 2021년 800억원의 세금 추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최근 몇 년 간 EU(유럽연합)를 중심으로 추진된 ‘글로벌 디지털세’ 논의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조세 회피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일정 매출 기준을 충족하면 그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고정 사업장의 위치를 중심으로 법인세를 매기던 과거 방식에 비해, 사업장과 상관 없이 전 세계에서 매출을 거두는 글로벌 IT기업들을 정조준한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글로벌 빅테크를 보유한 미국 정부가 앞장서서 디지털세 도입을 막고 있다. 빅테크들 역시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매출 원가를 몰아준 뒤 세금을 적게 내는 방식을 고수한다. 구글코리아가 싱가포르 법인에 매출원가를 송금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매출 전체를 해외로 보내기도 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5조원 넘는 매출을 올렸음에도 법인세를 ‘0원’ 납부한 글로벌 기업이 27곳에 달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 회피는 정보의 제한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성민 교수는 “구글코리아의 실제 매출 추정은 구글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경제효과보고서’ 덕분이었다”며 “이를 기반으로 연구 논문을 쓰자 구글 홈페이지에서 해당 보고서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선 국제적인 얼라이언스와 이를 통한 공조가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며 “조세당국에서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 패턴 파악부터 해야 어떤 방식의 국제 공조가 필요한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국제사회가 이들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디지털세(Digital Service Tax·DST)를 도입해 이른바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블룸버그 택스(Bloomberg Tax), 싱크탱크 택스파운데이션(Tax Foundation) 등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18개국이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적용한다. IT(정보기술) 기업이 이익을 내면 서버가 어디에 있든 수익이 난 국가가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든 셈이다.
국제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소득에 대해 매출이 발생한 국가가 과세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는 201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EU는 보고서를 통해 “제조기업들이 평균 23.2%의 평균 실효세율을 적용받지만, 디지털 기업들은 9.5%만 낸다”고 비판했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하는 소비자와 해당 제품이 개발되는 곳 사이의 지리적 불일치에 따른 것이다. 택스파운데이션은 2020년 정보 산업에서 창출된 가치의 40%가 북미에서 발생했지만,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약 41%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구글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각종 조세회피 수단을 이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지적은 점차 커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각국 정부가 나섰다. 특히 EU가 디지털세 도입 논의에 앞장섰다. EU 집행위원회는 2018년 3월 임시 조치로 ‘디지털 서비스세’의 도입을 제안했다.
다만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EU 차원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개별 국가들이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도입하게 됐다. 영국은 EU를 탈퇴한 2020년 4월부터 글로벌 매출 5억파운드(약 8996억원), 영국 내 매출 2500만파운드(약 449억8625만원)를 초과하는 기업의 초과 이익에 한해 2%의 세율을 적용한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EU 일부 회원국과 인도, 네팔, 콜롬비아 등의 국가들도 각각의 기준으로 세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반발했다. 디지털세의 영향을 받는 대부분 기업의 본거지가 미국인 것을 근거로 ‘불공정한 무역’,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관세 보복’으로 맞섰다. 프랑스가 2019년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표 수출품인 와인을 노려 ‘와인세’ 도입을 경고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2021년 영국, 인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튀르키예 등 6개국에 대해 20억달러 규모의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과 몇몇 국가들 사이 갈등이 이어지자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요 20개국(G20)과 포괄적 이행체계(Inclusive Framework·IF)를 통해 중재안을 내놨다. 디지털세를 도입한 국가들은 2024년까지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가 이뤄지면 자국의 독자적인 세제를 폐지해 새로운 국제 합의로 대체하기로 하고 이에 따라 미국도 보복관세 위협을 철회하기로 했다.
IF가 다루는 구체적 사안인 필라 1(Pillar One)은 디지털 기업의 본사가 어디에 있든 수익을 낸 국가에 과세권을 부여하는 다자간 합의다. 연 매출 200억유로(약 29조9214억원) 이상이고 이익률이 10%를 넘는 대기업이면 초과 이익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출 발생국에 디지털세로 내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필라 2(Pillar Two)는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이다. 다국적기업의 소재지와 상관없이 소득에 최소 15%의 법인세율을 일괄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과 브라질 등 일부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필라 2)에는 동의했으나, 디지털세 도입(필라 1)엔 부정적 입장이다.
올해까지 매듭짓기로 했던 OECD 주도의 다자 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는 OECD의 중재안을 따르지 않고 내년부터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자국민들로부터 연간 2000만캐나다달러(약 198억1540만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빅테크 기업이면서 전 세계 수익이 11억캐나다달러(약 1조1027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에 한해 캐나다에서 발생한 매출의 3%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검색시장 점유율 90.9%인 구글, 소셜미디어(SNS) 점유율 45.9%인 페이스북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미국은 지난 8월 캐나다-미국 간 무역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착수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8월30일 “미국은 캐나다가 최근 시행한 디지털 서비스세(DST)와 관련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른 분쟁 해결 협의를 캐나다에 요청했다”며 “미국은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일방적인 디지털 서비스 세금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경우 현재 부과하는 3%의 세율을 내년부터 5%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28일 미국 상공회의소는 “서비스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 프랑스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되고 미국과의 무역 긴장을 고조시키며, 글로벌 조세 협상의 진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이를 비판했다.
한편 다음 달 브라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디지털세 도입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G20은 OECD와 지난해 디지털세 성명문을 발표했고, 지난달엔 디지털세 관련 다자 조약문 서명을 위한 회람을 시작했다.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세금 회피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 홀로 규제에 나서기보단 ‘다국적 공조’를 통한 강력한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31일 업계 안팎에선 빅테크들의 성실한 세금 납부를 위해 정확한 매출 공개가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한국재무관리학회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구글코리아의 지난해 추정 매출(12조1350억원)이 구글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게재된 매출(3653억원)보다 33배 이상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구글코리아의 실제 납부 법인세는 155억원에 불과했다. 국내 IT(정보기술) 기업이 전체 매출에서 5% 안팎을 법인세로 납부하는 것을 고려하면 구글코리아는 약 5180억원을 내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추정이다. 전 교수는 “구글코리아가 싱가포르 법인의 업무를 단순 대행하고, 구글 플레이 서버도 싱가포르 등에 있다는 이유로 한국 매출의 대부분을 싱가포르 법인으로 이전하며 세금을 회피한다”면서 “세금을 적게 내는 조세회피처로 매출을 돌리고 국내 매출을 축소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처럼 빅테크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교수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플랫폼 기업들이 국경 없이 운영하니까 거기에 맞는 조세 정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국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글이 한국에 10조원 이상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수천억원 규모의 세금을 회피하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일갈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비슷한 맥락의 설명을 이어갔다. 유 교수는 “빅테크들의 조세 회피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고, 미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과세 룰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를 준용해서 국내도 법인세를 도입하면 빅테크들도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기업처럼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에 대해선 빅테크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미국 등 기준이 되는 룰을 적용해 이에 준하는 세율을 정하고 그 정도로 과세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만 능사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국내 기업의 세금을 감면해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네이버(NAVER), 카카오 등 글로벌 기업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은 기업도 구글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기형 구조가 형성된 게 문제”라며 “사실상 빅테크의 규제가 어렵다면 오히려 국내 기업의 세금을 줄여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4964억원을 법인세로 냈다. 전체 매출(9조6706억원)의 5.1%에 달하는 수준이다. 네이버는 구글코리아보다 2조원 이상 적게 벌었지만 법인세는 32배나 많이 낸 셈이다. 카카오 역시 구글코리아보다 약 11배 많은 1684억원을 법인세로 납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