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는 자연 환경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추울 때와 더울 때의 행동이 다르고 눈이 올 때와 비가 올 때의 기분이 다르다. 그런데 계절 변화가 인간의 생리적 반응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도덕적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와 영국 노팅엄대 사회심리학 연구진은 사람들이 특정한 도덕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봄과 가을에는 충성심, 권위, 순수함을 중시하는 보수적, 집단 중심적 가치관이 더 강해진다.

연구진은 이런 심리적 계절성은 선거, 제도 등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행동은 물론 개인의 건강 문제에 대한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11년부터 10년에 걸쳐 미국인 23만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실시한 온라인 설문 응답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실시한 소규모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이 만든 설문은 충성심(자신의 집단에 대한 헌신), 권위(지도자와 규칙에 대한 존중), 순수성(청결함과 경건함, 전통 고수), 배려(친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공정성(평등한 대우) 5가지를 측정하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충성심과 권위, 순수성 3가지는 소속 집단에 대한 순응을 고무하는 것으로,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에 해당하는 가치다. 나머지 배려와 공정성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권리와 복지에 초점을 두는 자유주의(또는 진보주의)에 해당하는 가치다.

연구진은 “응답자들은 봄과 가을에 보수주의적 가치를 더 강하게 지지했다”며 “이는 설문 조사를 진행한 10년 동안 일관된 흐름을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계절에 따른 기후 차이가 심한 지역에서는 보수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지도가 여름에 특히 약해졌다고 덧붙였다. 반면 배려와 공정성은 일관된 계절적 흐름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보수주의적 가치가 계절성을 갖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불안 심리를 꼽았다. 연구진은 9만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7년치 설문조사 결과와 10년간의 구글 인터넷 검색 단어 데이터를 통해 불안 심리가 봄과 가을에 가장 높다는 걸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마크 샬러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심리학)는 “이는 결속 가치를 강하게 지지하는 기간과 일치했다”며 “이런 상관관계는 불안 심리가 강해지면 사람들이 집단적 가치를 떠받치는 규범과 전통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도덕적 가치관의 계절성은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행태, 사회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한 여론, 예방 접종 캠페인 참여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선거를 언제 치르느냐가 유권자 선택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워드대 아이보리 톨드슨 교수(심리학)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이번 연구는 위어드 국가(고학력 고소득 민주주의 산업 국가) 사람들의 데이터에 의존한 것”이라며 “이를 일반화할 경우 소외된 집단의 고유한 도덕적 가치관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불안 심리와 도덕적 가치 간의 연관성을 더 깊이 조사해, 가치관의 계절성이 사회적 편견과 법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논문 제1저자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이언 홈 대학원생(심리학)은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우리는 매우 계절적인 동물이라는 점”이라며 “내면의 상태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