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amber)은 나무에서 분비되는 송진 같은 수지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화석처럼 굳어진 것을 말한다. 수지는 나무가 산불이나 곤충 등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끈적끈적한 물질이다.
호박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노란색 계통의 색상 때문에 옛부터 보석으로 취급받았다. 또 식물이나 곤충을 온전하게 보존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고생물학에서는 중요한 연구 자료로 쓰인다.
호박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지만 그동안 남극만은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를 비롯한 독일 연구진이 남극대륙에서 처음으로 호박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남극과학(Antarctic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7년 연구용 쇄빙선에 탑재한 해저 굴착 장비로 아문센해의 수심 946m 해저에서 채취한 두께 5cm의 갈탄층에서 호박 조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곳의 위치는 남위 73.57도, 서경 107.09도다.
연구진에 따르면 호박이 형성된 시기는 9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지기 2500만년 전이다. 이번 발견은 당시 남극이 지금과 같은 동토가 아니라 수지를 생산하는 나무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따뜻한 기후 환경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연구진은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는 7개 대륙 모두가 수지를 생산하는 나무가 생존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일깨워준 발견”이라고 이번 연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것은 영화에서 보듯 곤충 등의 온전한 생명체를 안에 품은 커다란 호박 덩어리는 아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작은 1㎜ 크기의 조각이다. 연구진은 그럼에도 나무 껍질 조각으로 추정되는 흔적은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남극 퇴적암에서 발견한 3m 길이의 화석 뿌리를 근거로 고대 기후 모델을 개발해 9200만~8300만년 전 남극의 습지가 많은 온대우림 환경을 재구성한 논문을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발견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수지가 산불에 대한 반응일 수 있으며, 이후 물에 잠겨 산소와 자외선 접촉이 차단되면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호박이 단단하고 투명한 것은 얕은 곳에 묻혔다는 걸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퍼즐을 메꾸는 또 하나의 조각”이라며 중생대 백악기 중기의 남극 근처에서 번성한 습지, 침엽수가 풍부한 온대우림 환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백악기는 지구 역사상 가장 따뜻한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