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전날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신와르는 가자지구 전쟁의 시발점이 된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설계하고 주도한 인물이다.

이에 신와르 사망을 계기로 1년 넘게 이어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가 미국 등 서방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동 안보 지형의 재편을 노리는 이스라엘은 하마스·헤즈볼라, 나아가 이란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쉽게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수장을 잃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인질을 살인하는 등 보복에 나서면서 전쟁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16일 가자지구 남부에서 신와르를 제거했다”며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인근 텔 술탄에서 사살한 하마스 대원 3명 중 한 명이 DNA 분석 결과 신와르로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이스라엘은 1989~2011년 신와르가 이스라엘에서 복역하던 시기 그의 DNA를 확보해 놨다.

신와르는 이스라엘이 벌여온 대(對) 하마스 전쟁의 최우선 표적이었다. 1200여명의 자국민을 숨지게 한 지난해 10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총책임자이자 하마스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당장 국제사회에선 “이번엔 종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 달도 안 남은 대선에서 ‘중동 악재’를 피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하마스는 더는 테러를 감행할 능력이 없다”며 “인질을 가족의 품으로 데려오고 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방안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가자지구에서 마침내 전쟁을 끝낼 기회가 왔다”며 반겼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전화 통화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 카타르 총리와 잇달아 중동 해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뒤 이스라엘로 떠났다.

바이든 정부가 바라는 시나리오는 지도자를 잃은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던 인질들을 석방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협상을 벌여 전쟁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여기엔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신와르의 뒤를 이을 새 하마스 수장이 비교적 온건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이와 관련, 레바논 현지 매체 LBCI는 “신와르가 사망한 뒤 하마스 수장 역할을 해외 조직 책임자인 칼레드 마샤알이 대행하고 있다”며 “그가 인질 석방 협상의 주요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에선 하마스 정치국장 출신인 마샤알을 실용주의적 인사로 파악하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상의 결과는 카타르를 비롯한 중재국들이 하마스를 설득해 인질 석방 의사를 이끌어내고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요구해온 헤즈볼라까지 휴전에 동참하는 것”이라며 “이러면 네타냐후도 지난해 10월 참사 실패를 만회할 만한 정치적 업적을 국내에 내세울 수 있어 휴전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종전이 이뤄지면 이는 미 대선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미 대선에 임박한 10월에 발생하는 돌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경합주(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추격을 허용한 해리스가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NYT는 “그간 민주당 내에선 이스라엘 문제로 해리스가 아랍계 유권자 비중이 높은 미시간 등 경합주에서 표를 얻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며 “중동 정세의 진전은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신와르의 죽음이 중동 전쟁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하마스가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란 관점에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의 연구 기관인 호라이즌 센터의 이브라힘 달라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신임 하마스 수장은 조직 내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신와르가 취해 온 노선을 완전히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요구해 온 이스라엘군의 영구적 가자지구 주둔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직 이스라엘 정보부 관리인 마이클 밀슈타인은 “협상파인 마샤알이 수장을 맡아도 가자지구 내에선 신와르의 동생이자 강경파인 무함마드 신와르가 군사 실권을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의 극단적 행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리더십 혼란을 겪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노린 테러나 억류 중인 인질을 살해하며 보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와 ‘저항의 축(반이스라엘 무장 단체)’을 구성해온 헤즈볼라와 이란 등이 강경 행동에 나선다면 확전 가능성은 커진다. 실제 이란의 주유엔 대표부는 이날 “신와르는 순교자다.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정신이 거세질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적들과 대결에서 새롭게 확전하는 단계로 전환을 발표한다”고 위협했다.

키를 쥐고 있는 건 이스라엘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동 정세의 향방은 전쟁을 주도해 온 네타냐후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풀이했다. 이스라엘 주변의 안보 지형을 새로이 구축하려는 네타냐후가 신와르의 사망을 발판으로 더 공세를 강화한다면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야코브 아미드로르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신와르의 죽음은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적어도 1년은 더 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지난 1일 이란의 대규모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구체적인 군사시설 타격 목표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확전에 대한 우려는 더 깊어지고 있다.

네타냐후는 신와르 사망에 대해 “끝의 시작”이라며 “(인질을 해하는) 그 누구든지 끝까지 추적해서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고 인질을 돌려보내면 전쟁은 내일이라도 끝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인남식 교수는 “관건은 예상치 못한 전리품인 신와르 사살을 네타냐후가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며 “미 대선 전까지 그가 이스라엘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을 무엇으로 보는 지에 따라 전쟁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