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유튜버는 자신이 사는 마을의 육교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해당 육교는 높이가 낮아 지난 5월 기준 육교 아래를 긁고 지나간 트럭만 183대에 달한다. 이 유튜버는 오로지 트럭이 육교 아래를 긁는 장면만 촬영해 업로드하는데 구독자가 32만 명에 달한다. 육교 근처에 살지도, 서로 만난 적도 없는 구독자들은 댓글 창에서 주 행정의 문제점, 사고 잔해물은 누가 치우는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31일 구글은 유튜브 내 이와 같은 팬덤 생태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 트렌드 리포트를 발표했다. 구글이 리포트를 위해 한국의 14~44세 온라인 팬 100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 또는 대상에 대한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유튜브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구글은 트렌드, 밈, 직캠, 설명 영상, 리액션 영상, 팬 아트, 1시간 분량의 영상 에세이 등 팬 콘텐츠가 원재료를 뛰어넘어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자체 팬을 끌어들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도 팬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파악해 상호 이익이 되는 창의적인 관계를 구축한다고 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숏폼 영상 제작과 생성형 AI(인공지능) 분야 기술이 발전하면서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Z세대(14~24세) 294명 중 8%는 팬덤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페셔널 팬’으로 나타났다. 자신도 팬이면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까지 창출하는 모습이다. Z세대 응답자 중 68%가 자신을 ‘영상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리포트는 유튜브 내 여러 종류의 팬덤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고 소개했다. 앞서 언급한 ‘실수하는 트럭 기사’ 팬덤처럼 작은 규모의 특수한 팬덤이 있는 반면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처럼 새로운 팬을 슈퍼 팬(팬덤 커뮤니티와 주기적으로 소통하고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팬)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인 ‘스위프티’는 콘서트가 열리기 전 유튜브에서 노래 가사와 서사를 소개하고 영상 에세이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문화적 영향력을 알리고 있다.
리포트에 따르면 팬들이 직접 만드는 팬 콘텐츠의 영향력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Z세대 응답자 중 53%가 어떤 대상 자체보다 그 대상에 대해 토론하거나 분석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한다고 답했다. 일례로 유명 게임 GTA6의 경우 최초 공개된 영상 트레일러가 24시간 만에 조회수 9300만회를 달성한 데 이어 이를 분석한 팬 영상들이 같은 기간 총 1억9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모습이다.
이 밖에도 유튜브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그에 대한 팬덤이 생기는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침착맨’, ‘잠뜰’ 등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올해 팝업스토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하고 2021년 탄생한 ‘이세계아이돌’은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와 오프라인 콘서트 등으로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새로운 팬덤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피트니스 크리에이터 김계란이 직접 멤버를 선발해 QWER이라는 밴드를 데뷔시켰다. QWER의 노래들은 큰 인기를 끌었고 그중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 ‘내 이름은 맑음’은 유튜브 주간 인기 뮤직비디오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일부 크리에이터들은 부캐로 활동하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구글 관계자는 “팬들은 단순히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팬덤의 대상 또한 팬들의 이런 참여에 빠르게 반응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팬 문화가 새로운 대중문화를 이끄는 주요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