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상대방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음성 신호의 연속적인 흐름이다. 말 뜻을 알아들으려면 말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단어를 구분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외국어 회화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드는 느낌 가운데 하나는 말을 구성하는 각각의 단어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외국어 회화를 공부할 때의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해 단어가 또렷이 들리기 시작하면 한 고비 넘긴 셈이다.

그런데 인류가 만든 대부분의 언어에는 이 관문을 쉽게 통과하도록 만든 비밀의 공통 법칙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가 중심이 된 독일 연구진은 세계 각 대륙에 거주하는 51개 인구집단의 언어를 조사한 결과, 단어의 첫 자음을 길게 발음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평균적으로 단어의 첫 자음이 중간 자음보다 약 13밀리초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세계 각지의 소수 언어 녹음을 모아 놓은 도리코(DoReCo) 데이터를 이용했다. 여기엔 30개 어족 51개 언어를 쓰는 16~100살 393명의 말이 녹음돼 있다. 연구진은 이를 소리의 최소단위인 음소, 단어, 중간 끊김이 없는 말 묶음을 뜻하는 발화(utterance)로 나눠 분석했다. 분석에 사용된 음소는 200만개가 넘었다.

분석 결과 51개 언어 중 43개 언어에서 단어의 초성 자음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의 첫 자음 소리 길이는 106밀리초로, 다른 위치에 있는 자음(93밀리초)보다 13밀리초 더 길었다. 나머지 8개 언어에선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초성 자음이 더 짧은 경우는 없었다.

연구진은 초성 자음이 긴 것은 상대방이 단어의 경계를 식별하고, 따라서 말을 개개의 단어로 분할하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언어에서는 일단 말을 멈춘 후 다시 시작할 때는 첫 자음이 짧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진은 이는 말 멈춤이 있는 경우엔 추가로 단어 경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단어 첫 글자를 길게 발음하는 것이 두가지 면에서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하나는 단어의 경계를 직접 표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듣는 상대방이 단어 인식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세계의 모든 언어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언어 표본이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언어에서도 단어의 첫 자음을 길게 발음하는 현상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