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민주당 대선 후보)의 파죽지세가 심상찮다. 2024년 7월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직후부터 해리스 부통령은 격전지를 돌며 세몰이에 나섰다. ‘군인-교사-미식축구 코치’ 경력의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뒤엔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당선’을 예감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혀 달라진 분위기에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11월 미국 대선 판세는 이대로 굳어질까?

여론조사 우위 다 잃은 트럼프

8월12일 밤(현지시각)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소유한 ‘엑스’(옛 트위터)의 음성 채팅 서비스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약 2시간 인터뷰했다. 불과 3주 남짓 만에 여론조사 우위를 몽땅 잃은 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두고 “현직 대통령을 몰아낸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선 “극렬 좌파” “3류 정치인” “가짜 후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내가 (토론에서) 바이든을 이겼다. 해리스는 무능하고, 바이든만큼이나 나쁜 후보”라고도 주장했다. 81살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한 대선판에서 78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심술 난 노인네’로 비쳤다. 시엔엔(CNN) 방송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범죄율·물가상승·기후변화 등과 관련해 적어도 20차례 이상 거짓 주장을 내놨다”고 짚었다.

인터뷰에 앞선 같은 날 새벽 1시9분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8월7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메트로 공항에서 열린 ‘해리스-월즈’ 선거유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었다. 그는 “카멀라가 공항에서 사기 친 것 알아챈 사람 있나?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해리스 부통령 쪽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엄청난 규모의 ‘지지 군중’이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리스 부통령은) 사기꾼이다. 다른 선거 유세 때도 가짜 ‘군중’을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쳐서 선거에서 이긴다. 투표소에선 더하다. 사진을 조작하는 건 ‘선거 방해’다.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짓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트로이트 공항 유세는 각종 매체가 현장에서 생중계했다. 무대가 마련된 격납고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상당수 지지자가 활주로 한편에 마련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유세를 지켜봤다. 주최 쪽 추산 1만5천 명이 모였다. 명백한 증거에도 ‘조작’이라 주장한 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첫째, ‘쿠데타’를 통해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 부통령은 부적격자다. 둘째, 조작된 유세장 사진을 통해 여론을 호도하는 건 불법이다. 셋째, 투표 당일에도 부정선거를 획책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전제는 ‘그러므로 내가 선거에서 진다면, 그건 진짜로 진 게 아니라 민주당이 선거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란 결론으로 이어진다. 2020년 대선 때처럼 ‘선거 불복’으로 나아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대선이 여전히 두 달 이상 남은 시점임에도, 그는 왜 이렇게까지 절박할까?

뉴욕타임스는 8월10일 시에나대학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른바 ‘3대 격전지’로 통하는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에서 적극 투표층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 해리스 부통령은 3개주 모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부는 여전히 ‘박빙’이지만, 앞선 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추세’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매직넘버’ 달성 앞둔 해리스

뉴욕타임스가 2024년 5월 실시한 조사 결과, 바이든 대통령은 미시간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42% 대 39%로 앞섰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인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승세였다. 펜실베이니아(37% 대 41%)와 위스콘신(39% 대 40%)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 이 3개주에서 모두 승리한 바 있다.

미국 대선은 인구수에 따라 각 주에 할당된 대통령 선거인단을 해당 주에서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독식’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전체 선거인단은 538명, 이 가운데 270명(과반+1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당선된다. 5월 여론조사 결과, 미시간(선거인단 15명)·펜실베이니아(19명)·위스콘신(10명)에 더해 네바다(6명)·애리조나(11명)·조지아(16명) 등 6개주가 ‘경합주’로 분류됐다. 이들 지역을 뺀 나머지 우세지역에서 확보한 선거인단은 바이든 대통령이 226명, 트럼프 전 대통령이 235명으로 집계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촉발한 6월27일 대선 후보 토론회 직후, 시엔엔은 “3대 격전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짚었다. 이들 3개주에 할당된 인원(44명)을 더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인단 279명을 확보하며 당선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된다. 공화당 전당대회(7월15~18일)를 앞두고 암살 미수란 ‘호재’까지 더해졌다. 그가 ‘당선’을 낙관했던 이유다. 하지만 전당대회 폐막 사흘 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후 단 3주 만에 여론 판세가 뒤집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확보했던 226명에 더해 3대 격전지에서 승리하면, 나머지 경합주를 모두 내주더라도 해리스 부통령은 ‘매직넘버’(270명)를 달성하게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일 터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8월19~22일)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바이든 등 전·현직 대통령이 총출동한다. 진보적 시민단체 ‘무브온’은 2016년 대선 막판 힐러리 클린턴 후보 유세에서 공연한 가수 비욘세와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11월 대선 압도적 승리를 위해 공식 지지 선언과 함께 전당대회에서 공연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당대회 효과’를 고려하면, 적어도 8월 말까진 ‘해리스-월즈 열풍’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막판 변수 언커미티드 운동

막판 변수가 있다. 당내 경선 때 바이든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해 ‘지지 후보 없음’(언커미티드) 운동(제1504호 참조)을 벌인 청년층 중심 진보적 유권자다. 이들은 시카고 전당대회 개막과 폐막일에 맞춰 대규모 시위를 준비 중이다. 특히 격전지에서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선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을 바라면 그렇게 하라”는 힐난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