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업계 전반에 퍼진 ‘삼성 위기론’을 돌파할 카드로 ‘메모리 초격차’를 꺼내 들었다.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메모리 1등 지위를 회복하고, 이를 위해 경쟁사와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이르면 이달 초 단행되는 인사 및 조직개편에서도 메모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수익성이 높은 인공지능(AI) 메모리에 집중하고, 기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턴키(일괄수주) 전략을 수정하는 등 메모리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우선 그동안 시장 불신이 컸던 HBM3E(5세대) 제품의 엔비디아 납품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실적발표에서 “주요 고객사 퀄(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고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전망”이라며 “4분기 HBM3E 비중은 50%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레거시(범용) 제품 비중은 줄이고 AI용 하이엔드 제품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며, 선단 공정 전환도 서두르기로 했다.

맞춤형(커스텀) HBM인 HBM4(6세대)부터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와의 협력 가능성도 내비쳤다.

김 부사장은 “커스텀 HBM은 고객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베이스 다이'(Base Die) 제조와 관련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내외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설계·메모리·파운드리를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 특성을 앞세워 턴키 전략을 펼쳐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전략이 오히려 기술 유출 우려, 고객사와의 경쟁 등으로 신뢰 확보가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다.

삼성전자가 기존에 고수하던 전략에서 한발 물러난 것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주를 덜 받더라도, 다른 파운드리와 협력이라는 추가 옵션 제공을 통해 고객들을 자사 HBM으로 유인시켜 메모리 사업의 실적 개선을 빠르게 이루겠다는 목표다.

이번 3분기 실적발표에서 드러난 위기 돌파 전략은 삼성전자 전체 실적의 50∼60%를 견인해온 메모리부터 살리자는 전 부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앞서 전 부회장은 지난달 초 3분기 잠정실적 발표 당시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냈다.

또 1일 경기도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의 공동명의 창립기념사를 통해 “변화 없이는 아무런 혁신도, 성장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후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4분기를 시작으로 내년부터 실적 반등에 성공할지다.

이와 함께 이달 대폭 이뤄질 조직 개편과 인사도 이목이 쏠린다.

‘메모리 우선’이라는 방향성이 잡힌 만큼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 LSI를 포함한 모든 사업부장 동시 교체와 동시에 메모리 사업에 주요 인력들이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7월 전 부회장은 반도체 수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에 HBM 개발팀을 신설하고, HBM3·HBM3E와 HBM4 기술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점유율 하락 등의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HBM 경쟁력을 살리겠다는 것은 메모리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이달 발표될 인사에서 메모리 사업 부분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