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플랫폼이 입점업체 측으로부터 중개수수료 등 거래조건과 관련한 협의 요청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대통령실·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자영업자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배달 플랫폼 입점업체들에 ‘단체 구성권’과 ‘거래조건 협의 요청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입점업체는 입점업체단체를 구성할 수 있고 ▶입점업체단체는 배달 플랫폼에 거래조건 협의를 요청할 수 있으며 ▶협의 요청 시 배달 플랫폼은 성실하게 협의에 응해야 한다는 등의 법 조항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이미 지난 7월5일 소상공인연합회 등 110개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김남근·오기형·민병덕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요구한 것이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 발의돼 있다. 경쟁법에 밝은 정태원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는 “해당 조항이 만들어지면 배달 플랫폼 중개수수료 인하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국회를 주도하는 민주당이 찬성하는 방안이라 국회 통과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 온라인 플랫폼 전반에 대해 자율규제 기조를 펼쳤다. 업계의 성장을 통한 경제 발전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최근 창간 기획으로 연속 보도한 ‘2024 자영업 리포트’를 통해 자영업자 계층이 무너지는 현실이 부각되고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배달 플랫폼 중개수수료 부담이 지목된 만큼, 정부는 입법규제 기조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지난 4일엔 정부가 ‘중개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검토 중인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다만 이런 규제는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배달 플랫폼 입점업체에 거래조건 협의 요청권 등을 부여하는 안의 경우 입점업체 측이 한 단체로 모이지 못 하고 분식집단체·한식당단체·중식당단체·일식당단체 등으로 난립해 혼란을 키울 수 있다. 배달 플랫폼 입장에선 의사결정을 지연하고 비용을 키운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개수수료 상한안의 경우 상한선을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적정 수준 아래일 경우 배달 플랫폼의 수익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정부는 입법 규제안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배달 플랫폼들이 자발적으로 중개수수료 인하 등을 하길 기대한다. 지난 7월부터 정부 주선으로 가동 중인 배달앱·입점업체 상생협의체에서 이달 중으로 합의안이 나오면 입법 규제안의 필요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도 지난 6일 K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사자들을 통해 합리적인 안을 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 측의 입장을 각각 들어보면, 간극이 여전하다. 점유율 기준 국내 1위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은 지난 8일 상생협의체 6차 회의에서 중개수수료를 기존의 9.8%에서 입점업체의 매출액에 따라 2~9.8%로 차등화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입점업체 측은 수수료 차등화에 찬성하면서도 상한선을 9.8%에서 5% 수준까지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상생협의체 회의는 격주로 열렸지만, 오는 7차 회의는 엿새 만인 14일 개최될 예정이다. 이달 말까지 회의를 이어간 뒤에도 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 사이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공익위원(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등) 측이 중재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만일 배달 플랫폼 측에서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권고안 형식으로 발표된다. 이후엔 입법 규제안 추진이 강행되고, 각종 정부 조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특히 공정위는 배달 플랫폼들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중개수수료를 올린 게 아닌지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