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명동점 내 한국금거래소를 찾은 김모 씨(30대)는 부모님의 부탁을 받아 집에 있던 자투리 금을 처분하러 나왔다. 그는 “금을 팔 때 기준으로 보면 지난주가 최고가였지만, 지금도 충분히 높은 가격이라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내놓은 것은 한쪽만 남은 귀걸이와 금반지 몇 개였다.
최근 금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집 안에 묵혀둔 자투리 금을 현금화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끊어진 목걸이, 낡은 반지, 심지어는 금니까지 금은방으로 모였다. 60대 여성 A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금은방에서 18K 금귀걸이 귀침과 끊어진 목걸이, 금반지 4개를 합쳐 89만원을 받고 기쁘게 발걸음을 돌렸다. 금을 매입한 금은방 사장은 “요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을 처분하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며 “특히 작은 금 조각까지 가져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SNS와 유튜브에서는 금값을 잘 쳐주는 금은방을 찾는 방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20대 여성이 자투리 금을 팔고 100만원 가까운 금액을 받아 들고 환호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영상은 짠테크(알뜰한 재테크)족 사이에서 관심을 끌며 조회 수가 수십만 회를 기록했다. 한국금거래소디지털에셋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금방금방’에서는 현재 위치와 그램 수를 입력하면 예상 판매가와 인근 금거래소를 안내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일부 소비자들은 여러 금은방을 돌아다니며 가장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는 곳을 찾아 거래하는 ‘발품 경제’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금을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는 최근 금값 상승과 ‘김치 프리미엄’ 현상에 따른 것이다. 실제 21일 금값은 온스당 2950달러 선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3일 KRX금시장에서는 그램(g)당 금 현물 가격이 런던귀금속거래소(LBMA) 가격보다 19.47% 비쌌다. 2014년 한국거래소의 KRX금시장이 생긴 뒤 가장 큰 격차다.
이런 가운데 이날 기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 99.99_1kg’ 가격은 1g당 14만6510원으로 하루 전보다 2.23% 하락했다. 같은 날 국제 금 시세는 1g당 13만6190원으로 소폭 상승하면서, 국내 금값과 국제 금값 간의 차이는 7.58%로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 14일 20.5%에 달했던 차이보다 크게 감소한 수치다. 국내에서만 금값이 유독 더 비싼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모양새다.
최근 국내 금값이 급등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있다.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의지를 밝히면서 시작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금 수요를 자극했고, 한국조폐공사가 골드바 공급을 중단하면서 국내 금값이 국제 시세보다 더 크게 올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세가 늘면서 금값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금값이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국내 금 시세는 지난 14일 대비 10.4% 하락하며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지난 14일 최고점에서 금을 매수한 일부 투자자는 ‘물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하루 동안 ‘금 99.99_1kg’에 대한 거래대금은 130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값이 단기적으로 출렁일 수 있지만,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장기적인 상승세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금을 처분하려는 사람들과 추가 매수를 고려하는 투자자들이 맞물리며 금 거래 시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호원·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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