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없이 선 채로 비장애인과 마주 보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게 큰 감동입니다.”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타인의 도움 없이도 착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웨어러블 기기가 개발됐다. 2018년 불의의 사고로 완전마비 장애인이 된 후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연구팀과 함께 로봇 하드웨어 개발에 연구원으로 참여해온 김승환 연구원은 24일 대전 대덕구 신일동 엔젤로보틱스에서 열린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슈트 F1’ 공개행사에서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김 연구원은 “처음 로봇을 입고 일어섰을 때 걷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라”라면서 “상체에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어떻게 걸을지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워크온슈트는 공경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해 온 하반신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이다. 최신형인 F1은 27일 열릴 장애인을 위한 생체 공학 보조 장치 경진대회인 ‘제3회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한다. 4년 만에 열리는 이 대회에는 26개국 71개 팀이 참여하며, 웨어러블 로봇 종목에선 태국·네덜란드·스위스·그리스 등에서 참가한 7개 팀이 겨룬다. 웨어러블 로봇 종목은 휠체어나 자전거 등 안정적인 보조 수단을 사용하는 다른 경기와 달리 선수가 로봇을 착용하고 직접 보행해야 해 ‘아이언맨 대회’로도 불린다. 기차 객실과 같은 좁은 좌석에 앉았다 일어나기, 계단 난간 잡지 않고 오르내리기, 짐 들어서 옮기기, 옆 경사와 징검다리 걷기 등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지팡이 없이 양손을 자유롭게 한 상태에서 걸어야 하는 자율보행 미션 때문에 일부 참가팀은 중도 포기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2020년 열린 제2회 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바 있는 공 교수 연구팀의 신형 로봇은 하반신마비 중에서도 중증도가 가장 높은 완전마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공 교수 연구팀은 2016년 워크온슈트1을 처음으로 발표한 이후, 2020년 워크온슈트4를 발표하면서 비장애인의 정상 보행속도를 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워크온슈트 F1에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타인의 도움 없이 로봇을 바로 착용할 수 있도록 전면 착용 방식을 적용했다. 로봇을 착용하기 전에는 휴머노이드처럼 스스로 걸어와 착용자에게 다가온다. 무게중심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기능을 적용해서, 착용자가 로봇을 잘못 밀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도 구현됐다. 디자인은 박현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맡았다.

부품 단위에서의 기술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엔젤로보틱스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로봇의 핵심부품인 모터와 감속기, 모터드라이버, 메인 회로 등을 전부 국산화했고, 모터와 감속기 모듈의 출력밀도는 기존 연구팀의 기술에 비해 약 2배(무게당 파워 기준), 모터드라이버의 제어 성능은 해외 최고 기술 대비 약 3배(주파수 응답속도 기준) 향상됐다.

특히 고가의 상위제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고급 모션제어 알고리즘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모터드라이버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술이 대폭 향상됐다.

공 교수는 “워크온슈트는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의 결정체”라며 “워크온슈트에서 파생된 수많은 부품, 제어, 모듈 기술이 웨어러블 로봇 산업 전체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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