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살인마는 실존적 자아실현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괴기한 이 질문은 최근 국내에서 상영한 뮤지컬 ‘리지’(사진)의 중심 주제다. 락 뮤지컬 리지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다. 이 뮤지컬은 189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룬다. 극 중 가족간 성폭력과 동성애, 존속 살인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뮤지컬은 도덕적 판단보다 보든가의 둘째 딸이자 도끼 살인마인 리지의 자아실현에 집중한다. 모든 정황이 리지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당시엔 이를 입증할 수사력이 부족했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순간 등장 인물이 승리의 세레머니를 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후 배우들은 관중들의 기립을 유도한 뒤 모형 도끼를 휘두르며 커튼콜 공연을 한다.
뮤지컬 리지는 17세 이상가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도끼로 내려 찍는 등 다소 괴팍한 표현들이 무대 도처에 깔려있지만 이를 두고 모방 범죄를 할 거란 상상은 하지 않은 듯하다. 문화이자 예술로 본 것이다. 리지는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국내에서 첫 공연을 했고 올해까지 삼연을 인기리에 마쳤다.
만일 이 뮤지컬이 게임으로 각색됐다면 한국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었을까. 아마 등급 분류 거부, 즉 유통 금지 처분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게임 유통 심의 체계가 어지간히 괴상하기 때문이다.
2017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국내 게임 유통을 심의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당시 ‘뉴 단간론파’라는 게임을 수입 금지하면서 모방 범죄를 부추기는 등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단간론파 시리즈는 학교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학생들이 최후의 생존자가 될 때까지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경쟁을 벌이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스릴 넘치는 생존 경쟁을 하고 살인자를 특정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두뇌 싸움, 특정된 범인을 잔인하게 처벌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당시 게임위는 인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 모방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면서 성인에게도 이 게임이 유해할 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위의 콘텐츠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른 플랫폼에서는 널리 유통되고 있다. 리지가 대표적이다. 단간론파는 현재도 해외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게임이다.
게임위의 오락가락 심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엔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올라온 성인 게임 2종을 뚜렷한 근거 없이 차단했다.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도 있지만 게임위는 유통 자체를 거부했다.
게임위의 심의는 밀실에서 이뤄지기에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못해 동굴 속처럼 알 수 없는 지경이다. 해외에선 서비스되는데 국내에선 할 수 없는 게임 사례가 십수년간 빈번하게 발생했다. 마침내 21만명의 게이머들은 지난 10월 게임위의 심의 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유명 게임 유튜버 김성회씨는 “게임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드리우는 현행 게임산업법 조항은 최근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으로 게임이 문화예술 범주에 포함된 시대적 인식 변화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게임위는 오히려 “게임은 상호작용의 특성 때문에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국회에 냈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830463&code=61121911&sid1=soc&cp=nv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