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LA의 자택에서 경질을 통보받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그의 선임과 경질 과정은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 영입과 명확히 대비된다. 당시 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김판곤 위원장은 “선임 과정의 공정성·객관성·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경기를 주도하고 지배하면서 이긴다’는 철학을 가진 감독을 찾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고 성적이 좋은 지도자, 축구에 대한 지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내 다면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2월,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가기 전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대표팀 감독 선임보다 더 중요한 게 운영과 관리다. 훈련과 경기에 대한 리포트를 받아 피드백을 줘야 한다.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협회 내에서 드물게 정몽규 회장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미운털이 박힌 그는 자리에서 밀려나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갔다. 2021년 3선에 성공한 정 회장은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를 없애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만들었다. 국가대표팀 운영규정(12조)도 ‘국가대표 감독 선발은 전력강화위 또는 기술발전위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로 바꿨다. 전문 축구인의 의견과 목소리를 둘로 나눠 힘을 빼버렸고, 전력강화위원장에 독일인(미하엘 뮐러)을 앉혔다.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깊은 클린스만을 데려왔다. 선임 과정과 계약 조건은 언론과 팬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로 이미 낙인이 찍혔던 클린스만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전력강화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표팀의 문제와 개선 방안을 논의한 적도 없었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차두리 수석코치도 존재감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손흥민-김민재, 손흥민-이강인 등 대표팀 내 갈등이 불거졌지만 수수방관한 게 요르단전 전날 ‘탁구장 사태’로 비화됐다.
클린스만은 경질됐지만 그에게 줘야 할 거액의 위약금(약 70억원)은 여전히 불씨로 남았다. 축구협회는 천안축구센터 건립비 충당을 위해 하나은행으로부터 300억원 대출을 받았다. 그만큼 살림이 쪼들린다. 한 축구인은 “클린스만과는 소송을 해서라도 위약금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대표팀 운영규정 15조에는 ‘대표팀의 감독은 대회 또는, 경기 종료 후 10일 이내에 감독보고서를 협회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요르단전(2월 7일) 포함해 그 동안 경기 후에 감독이 보고서를 낸 적이 있나. 클린스만의 행적에서 규정을 어긴 게 있으면 낱낱이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축구해설가 출신 신문선 전 명지대 교수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리, 대표팀 운영이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고 특정인의 의도에 휘둘리다 보니 이런 사태가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