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폭탄’ 시행을 하루 앞두고 이를 한 달간 전격 유예하기로 했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일단 잠정 중단되면서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 우방에게도 무차별적인 관세 압박을 가하고, 무역 적자 해소뿐 아니라 추가 세수 확보, 마약·불법이민 문제 해결 등 정책 수단으로 관세를 전방위 활용하면서 언제든 관세 전쟁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를 30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는 “캐나다는 안전한 북부 국경을 확보하고 펜타닐과 같은 치명적인 마약을 종식시키기로 했다”며 “이번 초기 결과에 매우 만족하며 토요일(1일) 발표한 관세는 30일 동안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3억달러 규모의 국경보안 강화계획 시행 방침을 밝혔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단속을 위해 ‘펜타닐 차르’를 신설하고 마약 유통 조직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는 한편 약 1만명의 인력을 국경에 투입하기로 했다. 국경을 24시간 감시하고 미국·캐나다 간 합동 기동 타격대를 출범시켜 조직범죄와 펜타닐, 자금 세탁 퇴치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국경에 군인 1만명을 즉시 배치해 펜타닐과 불법이민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는 4일 자정부터 발효 예정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캐나다·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관세 25%,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기존 관세에 더해 추가 관세 10%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무역 적자와 함께 불법이민 유입, 펜타닐 마약 유통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이날 오전엔 트루스 소셜에 관세 조치가 “마약 전쟁(DRUG WAR)이기도 하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리는 아마 24시간 안에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펜타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합의하지 못하면 중국 관세는 매우 상당할 것(substantial)”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중(對中) 10% 추가 관세는 일단 4일 자정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의 막판 협상 타결로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카드가 ‘위협용’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트럼프발 관세 전쟁은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2기에서 관세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관세를 단순히 무역 적자 해소와 제조업 복원뿐만이 아닌 세수 확대, 불법이민·마약 문제 해결 등의 정책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관세를 세입과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해 왔다”며 “하지만 다른 나라로부터 약속이나 정책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 칩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봤다.
이번 관세 유예 조치가 인플레이션 충격 등을 우려해 일단 시간을 벌고 보다 정교한 관세 정책을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쟁의 전선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전날 “유럽연합(EU) 제품에도 곧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31일엔 반도체, 철강, 제약 업종에도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와 보복 관세 도미노, 공급망 혼란, 인플레이션, 성장률 하락 등으로 이어질 글로벌 무역 전쟁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혼란스러운 마지막 순간의 움직임은 트럼프가 심각한 경제적 결과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에 대한 레버리지로 관세를 사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캐나다와 멕시코가 트럼프의 요구에 응하기로 한 이번 결정은 관세를 적뿐만이 아닌 동맹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트럼프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https://media.naver.com/journalist/015/7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