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의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청구인 수는 무려 21만명. 지난 8일 제기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제32조 제2항 제3호에 관한 위헌소원이다. 해당 조항은 아래와 같다.
제32조(불법게임물 등의 유통금지 등)
②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반입하여서는 아니 된다.
3.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것
청구인 대표와 대리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광범위한 게임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어 업계 종사자의 창작 자유와 게임 이용자의 문화 향유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해당 조문이 위헌인 이유로는 명확성의 원칙 위배를 들고 있다. “모호한 조항 탓에 심의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해 제작자와 배급업자가 법을 예측하고 따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물을 시장에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직접적인 조문은 따로 있다. 바로 게임법 제22조(등급분류 거부 및 통지 등)다.
이 조항은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형법」 등 다른 법률 또는 게임법 규정에 의해 규제 또는 처벌대상이 되는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 신청이 있거나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 등으로 등급분류를 신청했을 때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그 분류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지 못하면 게임은 시장에 유통될 수 없다. 따라서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는 위 조항이야말로 게임 심의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며 강력한 근거 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번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은 제22조 제2항이 아닌, 제32조 제2항 제3호일까? 청구인 대표와 대리인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른바 ‘사전검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법리 등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 설명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열과 관련된 그간의 헌법재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상과 의견’ 사전검열은 위헌…등급분류제도는 합헌
검열과 관련된 법리는 주로 ‘영화’와 관련해 발전했다. 한국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검열 속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군정과 군사 정권시절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에 대한 사전검열은 계속됐다.
1984년에는 ‘검열’이라는 단어를 ‘심의’로 바꿨다. 하지만 단어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1987년에는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됐지만 촬영을 마친 작품에 대한 삭제 및 상영금지는 여전히 가능했다.
그러던 중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화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의 심의를 받아야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행정권이 공윤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공윤이 영화 상영에 앞서 그 내용을 심사해 심의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한 영화에 대해서는 상영을 금지할 수 있고, 심의를 받지 아니하고 영화를 상영할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한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제도에 해당한다는 결정이었다.
다만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위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유통단계에서 영상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전에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논리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제도’이다.
그런데 초창기의 영화 등급분류에는 ‘상영등급 분류보류’라는 등급이 있었다.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이유로 상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보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사전검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30일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상영등급분류보류를 위헌이라 결정했다. 등급분류보류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으며 탄생한 것이 바로 ‘제한상영가’ 등급이다.
제한상영가 등급 규정에 대해서도 2008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는 계속 운영되고 있다. 위 헌법불합치 결정이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가 사전검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규정이 모호해 어떤 영화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에 따라 2009년 개정 영화법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해 현재 이 제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게임법 제22조 제2항의 ‘등급분류 거부’는 과거 위헌 결정을 받았던 영화의 ‘상영등급 분류보류’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표현만 다를 뿐이지 위원회의 등급분류가 없이는 유통될 수 없다는 효과의 측면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위 두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위헌 결정을 받았던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내용검토’를 통해 ①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을 손상할 우려가 있을 때 ②폭력․음란 등의 과도한 묘사로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③국제적 외교관계, 민족의 문화적 주체성 등을 훼손하여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을 때 등급분류를 보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다. 영화라는 표현물의 내용만을 규제했던 것이다.
반면 게임법 제22조 제2항은 표현물의 내용에 관한 사항이 아닌 등급분류거부사유도 열거하고 있다. ▲사행행위 규제법이나 형법상 처벌대상이 되는 경우 ▲정당한 신청 권원을 갖추지 아니한 경우 ▲신청 방법이 부정한 경우 ▲사행성게임물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다.
이를 표현물의 사상이나 의견에 대한 내용규제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이 조항 전부가 헌법상 사전검열금지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게임법 제22조 제2항에 위헌 소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등급분류 거부는 다른 법률뿐만 아니라 ‘게임법이 금지하는 행위’를 근거로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원회의 등급분류 거부는 이번 헌법소원의 심판대상 조문인 제32조 제2항 제3호를 근거로 이뤄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는 표현물의 내용검토에 해당한다. 결국 등급분류 거부 문제는 제32조 제2항 제3호를 해결해야만 한다.
여러 법리적 검토와 전략적 판단을 거친 이번 헌법소원은 어마어마한 청구인 수와 이에 상응하는 언론의 관심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현물로서 게임이 겪고 있는 규제 상황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헌법재판은 고여있는 물이 아니다. 천천히 흘러가는 큰 물결이다. 헌법재판소는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해 시대에 맞는 헌법정신을 찾아나간다. 영화와 음반을 둘러싼 사전검열 판단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변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와 변화한 시대상이 조화롭게 반영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