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도입 예정인 인공지능교과서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국가가 주도해 공교육 전체에 도입하는 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인 데다, 막대한 비용, 추진방식, 인공지능이 끼칠 효과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인공지능교과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기존의 디지털교과서는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기기에 옮긴 수준인데 인공지능교과서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학습 수준, 강·약점을 고려해 학습 교재가 제시된다. 맞춤형 학습을 통해 빠른 학습자에게는 심화학습을, 느린 학습자에게는 보충학습을 제공해 학교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인공지능이 교육의 빈틈을 채우면 사교육 의존이 감소하고 교육 격차가 줄어 공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수업중 주의력과 문해력이 떨어져 학습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불안감도 크다. 지난 5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게시된 지 30일 만에 5만 명 이상의 동의 했고 전국 17개 교육감 중 9명의 교육감이 신중 의견을 표명했다.

관건은 인공지능교과서를 활용하면 학습격차는 줄고 학업성취도는 향상될 수 있을지다. 인공지능교과서의 알고리즘, 즉 학생들의 학습수준에 따른 반응형 학습은 오래된 시도다. 미국에서 학생들의 디지털교육을 지원하는 케이(K)-12학년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 기술이 교육 현장에 미치는 성과와 한계를 연구해온 저스틴 라이시 엠아이티(MIT) 교수는 저서 ‘언택트 교육의 미래’에 30년 동안 이뤄진 이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부유한 학생들은 교사·부모·성인의 지도를 더 많이 받아 자신의 속도로, 더욱 창의적인 활동에 기술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성인의 지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반복 연습과 훈련에 기술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계층간 디지털 기기 접근의 격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문화적 형태의 배제인 셈이다. 라이시 교수는 “기술이 불평등 시스템을 파괴하고 혁신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이미 부유한 학습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투입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수행한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을 평가하고 분석한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는 강사의 개입이 성공과 실패를 갈랐다고 짚었다. 학생과의 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된 경우는 성공할 가능성이 컸던 반면, 학생들의 자발성에 기대어 강사가 개입을 최소화한 경우는 실패했다. 이처럼 기기의 격차보다 사용의 격차에서 성패가 갈라졌다. 권 교수는 학습 동기와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을 짚으면서 “학생의 활동을 자율적으로 놔두기보다 강사가 직접 개입해 관리할수록 학습 효과에 도움이 되었고 학습 동기와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추가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학습효과가 낮았다”고 말했다. 기술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인공지능교과서를 통한 맞춤형 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는 학생들의 창의력 강화다. 정부는 인공지능교과서가 교육의 빈틈을 메우면 교사들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토론·협력·프로젝트 학습에 집중할 수 있어 창의력 교육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교과서가 지향하는 맞춤형은 문제풀이 역량, 즉 수능 평가에 갇혀 있어 창의력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정민 교수는 “모두가 맞춤형 교육을 이야기하지만 지금 추진하는 인공지능교과서는 학생들의 약점을 보완해 문제풀이 능력을 높이는 ‘주입식’으로 수능 성적을 높이는 데 강조점이 있다”면서 “진짜 창의력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수능 중심 대학입시체제를 놔둔 채 추진되는 인공지능교과서는 아이들의 질문을 일정한 틀 안으로 가둬 주입식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라이시 교수도 기술만으로 교육을 바꿀 수 없다면서 “중요한 것이 기술이 아니라 학습자”라고 강조했다. 교육 시스템은 교사와 학생은 물론 가정·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상하는 정치적 제도이기에 학교의 돌봄과 같은 기술을 넘어선 문제가 학습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신작 ‘넥서스’에서 기존 기술은 도구에 불과했지만, 인공지능은 주체성과 독립성을 갖춘 능동적인 행위자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통제와 이해를 벗어나 인류에게 전에 없던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 추진되는 인공지능교과서가 생성형 인공지능과는 거리가 있다 해도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한 중대 결정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은 매우 크다. 인공지능교과서를 서둘러 도입하기보다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춘 제도를 구축하는 힘들고 다소 재미없는 일”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