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전 중인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 관련 추가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스캔들로 공천받지 못한 후보가 있는 지부에도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를 두고 “후보에 지원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해 빈축을 사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24일 오전 히로시마시에서 열린 거리 연설에서 비자금 스캔들로 공천받지 못한 후보가 있는 지부에 2000만엔(약 1억8204만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자민당의 공약, 정책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급한 것이지 공천받지 못한 후보에게 지급한 것이 아니다”라며 “선거에 사용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는 자민당이 총선을 앞두고 각 지부에 2000만엔을 지급하며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가 운영하는 지부에도 이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런 시기에 이런 보도가 나오는 것에 진심으로 분노를 느낀다”며 “우리는 그런 보도에 굴복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은 당 내부적으로도 “이번 정당 교부금은 당세 확대를 위해 자민당의 선거구 지부에 교부된 것이고 공천 여부와는 무관하다”며 “아카하타의 보도는 사실을 곡해하고 있다. 위장 공천이라는 지적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서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서도 과반을 얻기 어렵다는 정세조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전날 마이니치신문은 JNN방송 등과 함께 선거 판세를 분석한 결과 자민당의 의석수는 171~225석, 공명당은 23~29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선거 시작 직전 자민당(256석)과 공명당(32석) 의석에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이시바 총리가 강하게 나온 배경도 해당 보도가 자민당과 대척점에 서 있는 공산당 기관지에서 나왔다는 점을 부각해 지지층 결집을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론에선 ‘적반하장식’ 태도라는 비판 목소리가 작지 않다. 자민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했더라도 해당 후보가 지부에 대한 영향력은 크기 때문에 선거에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비자금 스캔들로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당 지부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후보는 8명에 달한다.
나카키타 코지 일본 중앙대 정치학 교수는 야후재팬을 통해 “이시바 총리가 비자금 문제에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는 이제 날아갔다”며 “과거의 이시바 총리라면 비공천 후보에 2000만엔을 지급하는 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그런 발언을 스스로 나서 하고 있다니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일본 엑스(X·옛 트위터)에서도 ‘비공인’ ‘비공인 후보 2000만엔 지급’ ‘이시바 총리’ 등이 주요 트렌드에 오르는 등 역풍이 거센 상황이다. 한 누리꾼은 “당내 야당이라고 했던 이시바 총리이지만 총리가 되고 나서 원래 자민당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며 “자민당을 바꿔준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 결과가 기대된다”고 조소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이시바 총리의 분노를 느낀다는 말에 분노를 느낀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야권은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이날 요코하마시 연설에서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을 반성 하에 비공인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뒤에서 공천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