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주인공만큼 기억에 남는 조연이 있다. 이들이 없으면 영화는 얼마나 심심할까. 내 인터뷰는 항상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창업을 다루는 언론도 주인공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다. 창업가들의 마을 ‘논스’에 산 지 4년. 여기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창업가 한 명을 키우는 데도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변정은님(사진)은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비타민을 챙겨주는 숨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정은님은 창업가의 마을에 살면서 창업을 선택하지 않았잖아요. 여정이 궁금해요.
“논스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잘 때까지 창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 열기 속에서 저도 창업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던 거 같아요. 처음에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왠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거 같았죠. 스타트업 두 곳에서 초기 멤버로 일하는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창업은 정말 불확실성의 연속이에요. 계속해서 사업의 방향을 바꿔야 하고,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업가 자신의 확신이더라고요. 문제를 풀고자 하는 진정성인 거죠. 과연 내가 회사가 추구하는 문제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는지 솔직히 마주했어요.”
―포기하는 결정도 엄청난 용기라고 생각해요. 가치관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나요.
“쉬면서 언제 가장 행복한지 생각해봤어요. 그때 알게 됐죠. 제가 누군가를 도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더 중요했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창업가들은 종종 자신을 돌보지 않잖아요. 저라도 건강식품을 자리에 쌓아두고 동료들을 챙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강 전도사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챙겨먹는 영양소나 오트밀 식단을 기록해서 공유하기도 하고요.”
―정은님이 전파하는 건강식품은 항상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을 만들 수도 있을까요.
“논스의 많은 사람이 회사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저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좋아서 재단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하니까 창업이 답인가 생각했던 거죠. 지금은 제 방식으로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마케팅도 다른 사람을 돕는 수단으로 생각하니까 의미가 생기더라고요.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도울 때 정말 기뻐요. 언젠가는 재단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제 직업이 되면 좋겠어요. 창업가들의 건강과 행복을 돕는 재단을 만들 수도 있겠죠?”
정은님의 목소리에는 오랜 고민 끝에 솟아난 설렘이 느껴졌다. 우리 모두 꼭 회사를 차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영향력과 따뜻함을 더할 수 있다. 각자의 속도로,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 그게 우리 모두의 작은 ‘창업’ 아닐까.
김수진 컬처디렉터
변정은(인스타그램 @jjung.nergy)의 플레이리스트
1. 사피엔스 스튜디오: 김경일 교수, 진로 고민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조언!
https://youtu.be/VYjw30wTUfE?si=gYA30PhaclRM5Zi8
새 길을 찾는 동안 이 영상이 큰 힘이 됐어요. 특히 ‘적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에 위로받았죠. 제가 만약 회사에 계속 있었더라면, 아직도 창업을 동경하고 미련이 남았을 거예요. 이 모든 경험이 있었기에 적성을 알아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