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물리학상은 21세기 첨단 인공지능(AI) 기법인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의 토대를 닦은 존 홉필드(91)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76)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AI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8일 “이들이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을 가능케 하는 기반 발견 및 발명’과 관련한 공로를 세운 점을 높게 평가했다”면서 “이들은 물리학적 도구를 이용해 오늘날 강력한 머신러닝의 기초가 된 방법론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3000만원)가 수여된다.

존 홉필드는 1980년대 초반에 자신의 이름을 딴 ‘홉필드 신경망’(Hopfield Neural Network)을 제안하며 신경망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립한 학자다. 인간 뇌의 뉴런 활동을 모방해 정보가 저장되고 처리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프리 힌턴은 영국 출신으로 21세기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학자다. 홉필드 교수의 신경망 연구를 바탕으로 머신러닝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힌턴 교수는 특히 머신러닝 중에서도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개발, AI 빙하기를 깨고 21세기 AI의 혁신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의 딥러닝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2년 열린 국제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에서였다. 힌턴 교수의 제자로 구성된 수퍼비전팀이 딥러닝 기법을 활용, 탁월한 성적으로 우승해 화제가 됐다. 당시 수퍼비전팀은 영국 옥스퍼드대, 일본 도쿄대, 독일 예나대, 제록스 등의 유명 연구기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우승했다. 다른 팀이 오답률 26%대에서 소수점 공방을 벌일 때 수퍼비전팀은 15%대를 기록했다. 50여 년 역사를 가진 AI의 혁신을 불러온 딥러닝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엘런 문스 노벨 물리학 위원회 의장은 “수상자들의 연구는 이미 큰 혜택을 가져왔다. 물리학에서 우리는 특정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공신경망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머신러닝은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지만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우려 역시 불러일으켰다. 인류는 이 신기술을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인류의 최대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책임을 공동으로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힌턴의 딥러닝 기법은 한국 사회와 기업에 빠르게 흡수됐다. 인공지능 의료진단 스타트업 루닛의 백승욱 의장은 ”2013년 창업할 때 힌턴 교수의 제자팀 중 한 명이 딥러닝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기술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딥러닝이야말로 그간 우리가 연구해 오던 것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바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힌턴 교수는 한국의 인공지능 분야 연구·개발에도 관심을 표했다. 그는 2016년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의 일부 연구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랐으며 교육 분야에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학자들을 압박하는 것보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딥러닝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