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송광고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햄버거·피자 등 광고제한 규제 완화 조치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개별 부처 반대에 부딪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방송광고 시장이 변화된 생활상을 반영하지 못한 채 낡은 규제에 발이 묶인 사이 규제에서 자유로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광고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이다. TV 대체제로 자리잡은 OTT 광고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 방송 시장의 경쟁력은 사실상 땅에 떨어진 상태라는 지적이다.

■광고 규제 법령만 70여개 첩첩산중

22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국내 방송광고 관련 사항을 규율하는 법률은 250여개, 조문은 약 1030여개에 달했다. 이 중 광고규제와 직접적 관련성을 갖는 법령은 약 70여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방송광고심의규정 제43조 등에는 광고 금지 품목이 명시돼 있다. 주류 광고는 음주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17도 이상의 주류가 금지돼 있다. 생후 6개월 미만 영아가 먹는 조제분유와 조제우유, 젖병과 젖꼭지 제품 등 일부 육아제품의 방송 광고도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유명무실한 규제로 전락하며 방송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모유수유 촉진 운동 동참을 이유로 유성분 60% 이상 포함된 1~2단계의 모유대용품 분유인 조제분유의 모든 매체 광고를 금지했다. 이후 30년 넘게 분유 광고를 막았다.

■유튜브는 규제 안받는데 TV는 왜?

방송사업자들은 다른 법령에서 제한하는 품목도 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 식품 규제가 대표적이다. ‘어린이 식생활 안전 관리 특별법’이 발목을 잡는다. 햄버거, 피자, 아이스크림, 커피, 과자 등 고열량·저영양 및 고카페인 식품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 고열량·저영양 식품 기준은 식사대용일 경우 1회 섭취참고량당 열량 500㎉를 초과하고, 단백질 9g 미만이거나 나트륨 600㎎을 초과하는 식품 등은 금지된다. 간식용은 1회 섭취참고량당 열량 250㎉를 초과하고 단백질 2g 미만인 식품 등이 금지 대상이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방송광고 심의규정에 어린이의 건전한 식생활을 저해하는 표현에 대한 규제가 이미 있다”면서 “그런데도 일부 품목에 대해 금지 대상에 모두 넣는 것은 명백한 중복 규제”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어린이들의 이용률이 높아진 유튜브 등 디지털미디어는 고열량·저영양 식품광고에 대해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데도 방송광고만 제한한다면 온라인 광고 등과 역차별 문제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국무총리 산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는 지난 3월 발표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을 통해 오후 5~7시 사이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고열량·저영양 식품 광고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요구한 고열량·저영양 방송광고 전면 허용은 소관 부처인 식약처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최근 열린 관계 부처 회의에서 “어린이 식생활 보호가 필요해 규제 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은 성인의 광고 시청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면서 “개별 부처 반대로 규제 개선 조치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만큼 총리실에서 ‘키’를 잡고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OTT와 역차별 논란도

OTT,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의 부상은 방송 광고 시장의 침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통위에 따르면 지난 2022년도 방송광고시장 규모는 2조894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지상파 3사 방송광고 매출액이 0.3% 줄어든 1조2894억원을 기록했고, 종편계열 채널사용사업자(PP)는 9.8% 떨어진 4666억원, CJ계열 PP는 6.1% 감소한 4364억원으로 집계됐다.

방송법 규제를 적용받는 국내 방송사업자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글로벌 OTT는 다양한 광고형 서비스 모델을 선보이며 광고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는 지난 2022년부터 콘텐츠 감상 시 시작과 중간 부분에 광고를 삽입하는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월 5500원)를 출시하며 방송광고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시훈 계명대 교수는 “방송 광고는 다른 매체에 비해서 규제가 더 강력하고 촘촘하게 이뤄져 있다”며 “지나치게 세세한 광고 규정이 사업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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